미국에 온 그 이듬해 초여름 맑은 하늘아래 햇살이 유난히 반짝이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집안에 있기에 아까운 날씨라 별 볼일도 없이 집을 나와 걷다가 부근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러 가벼운 식료품 몇 점을 사들고 오면서 건널목 신호등에 섰다. 어떤 자그마한 체격을 가진 은빛머리의 여인이 옆에 서더니 날씨가 이렇게 아름다우냐고 했다. 나도 캘리포니아 날씨는 너무 좋다고 하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신호등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나는 몇 달 전 결혼 후 오클랜드 매릿 호숫가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꾸몄다고 했더니 자기도 바로 길 건너편 작은 아파트에 남편과 산다고 했다. 그분의 이름은 도로시 킴브렐이라고 했다. 자기 아파트를 가리키며 꼭 들리라면서 한번 기회를 만들겠다고 우리는 서로 인사하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호숫가로 향한 넓은 창을 내다보니 도로시의 아파트가 보였다. 그 아파트에 사방이 유리로 된 옥상 방이 있는데 도로시 남편이 화실로 쓰고 있다 했다.
며칠 후 도로시는 자기가 주선하는 교회 수양회를 같이 가자고 했다. 저녁에 남편한테 이야기 했더니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며칠 같이 가느냐고 하여 나도 아직 미국생할이 낯선데 다음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그 후 킴브렐 부부와 아주 가깝게 지냈다 도로시는 젊어서 그 시절 보기 드문 여자로서 목사 안수를 받은 분이고 남편 헤이든은 엔지니어로 호수 건너편에 보이는 카이저 빌딩에서 일하면서 시간만 있으면 옥상 방에서 예술작품에 몰두하는 예술가였다. 도로시는 산호세쪽 캠블에 있는 감리교회에서 일할 때 아담한 집이 있었는데 헤이든이 매일 출퇴근하기 힘들어 자기가 은퇴하고 오클랜드로 이사했단다. 그때 그분들이 우리 부모님보다 몇 살 위인 50대 후반이었다.
그 후 우리는 교회도 같이 다니고 성경공부도 하고 일주일에 한번정도 식사도 같이했다. 우리는 킴브렐 부부를 한국말로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할머니는 내가 미국에 온 의도를 아시고 UC 버클리 대학을 같이 방문하여 입학절차를 알아보자고 했다. 그때 나는 첫임신이 된 것 같다고 했더니 너무도 반가워하며 공부는 다음에 하라며 수소문하여 알게 된 의사한테 데리고 갔다. 할머니는 내 임신 기간 동안 친정어머니 역할을 했다. 그분들은 40대 후반에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교인이신 할머니는 우리 어머니와 자기가 전생에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며 지극정성으로 나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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