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호길 박사는 소립자물리학의 연구 수단인 입자가속기학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물리학자였다. 그는 포항공대를 창립하여 세계적 수준의 공과대학으로 끌어 올린 훌륭한 교육자였으며, 방사광가속기라는 첨단 거대 연구시설을 설립하여 한국과학기술의 질적인 도약을 마련한 과학기술계의 위대한 지도자의 한사람이었고, 한문 고전을 줄줄 읽고 한시를 지을 수 있는, 그리고 유교전통의 현대적 부활에 크게 기여한 선비였다.

김호길 박사는 1933년 안동의 지례에서 태어났다. 6.25사변후 고학과 자습, 독학으로 1956년 서울대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영국 버밍함대학에 유학, 2년 반의 기록적 단기간에 박사학위를 얻는다. 1964년 버클리의 로렌스연구소를 거쳐 1966년부터 12년간 메릴랜드대학에서 물리학 및 전기공학교수로 근무하였다. 1978년 버클리로 되돌아와 선임과학자로 5년 재직후 1983년 영구 귀국한다. 그는 하전입자들이 나선형 궤도를 그리며 빛의 속도 가깝게 가속되는 원형가속기 (Cyclotron) 연구에서 세계적 전문가이었고, 그가 고안한 소위 킴스 코일 (Kim’s Coil)은 가속된 하전입자들을 효과적으로 끌어내어 실험에 쓸 수 있게 하는 부속장치로서 유럽의 소립자연구의 본산인 CERN 의 가속기 등에 장치되어 크게 기여하고 있다한다.

두 번째의 버클리시절 필자도 같은 연구소 근무 중이어서 한인과학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자기는 귀국하는 길이며, 버클리에서 자녀들의 대학교육이 끝날 때까지 잠시 머물 뿐으로, 한국에 새로운 대학을 세우고 방사광가속기를 건설하여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소망을 여러번 들은 기억이 있다. 정치, 역사, 종교, 철학, 과학, 문학 등에 종횡무진하고도 독특한 견해를 청산유수로 풀어내는 언변과, 밤새도록 마시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열변과 농담을 토해내는 대단한 정력, 교육과 과학정책에 대해 뚜렷한 목표와 참신한 추진 방법을 논리정연하게 전개하여 듣는 사람들을 수긍케 하는 그의 설득력을 자주 목격한 바 있었다.

귀국 후 처음에는 진주연암공전학장으로 취임하였으나, 1985년 포항제철의 박 태준 회장과 의기투합하여, 포항공대를 설립하고 해외 중견 한인 과학자들을 다수 유치하여 세계적 수준의 연구대학으로 발전시키고, 국내과학자들의 설계와 중국과학자들의 도움으로 1994년 당시 세계 제4위규모의 방사광가속기 시설의 설치에 성공한다. 이 시설은 고속도로 가속된 전자빔으로 부터 연구자가 필요한 파장의 빛을 고강도, 고휘도로 공급할 수 있는 시설로, 각종 첨단재료들의 개발연구에 필수적 수단이다.

그는 “난사회”라는 한시 창작, 상호비평의 모임에 핵심멤버로 활동하여 상당수의 한시를 남겼다. 그는 또 1987년 유교사상의 현대적 부흥을 도모하는 도덕학술운동단체 “박약회” 의 회장직을 맡는다. 영향력 있는 사회 지도자들등 수천 명이 회원으로 참가하게 되고, 그의 사후, 2004년에 중국 산둥성 곡부에서 해외학술대회가 열리고 회원 556명이 공자사당에 참배하여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례의식을 치르는데 그때까지 중국에서 봉건종교로 억압받던 공자와 유교문화가 부활되는 계기가 되어 지금은 중국정부가 중국문화유산으로 떠받들고 세계 곳곳에 공자학당을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1994년 4월 30일 아침 교내체육대회에서 발야구 게임 중 홈으로 달려들어 오다가 콩크리트옹벽에 머리를 부딪쳐 뇌진탕으로 61세의 나이로 급서하여 그의 인품과, 그의 추진력과 지도력, 그의 깊은 통찰력과 창의성을 아까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슬픔을 남겨주었다. 그가 이룩한 과학적 업적과 유산은 한국과학기술발전에 이미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박약회운동의 영향은 국내외에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