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1949년까지 수차례 한국 방문 판화.수채화등 작품남겨
’민씨가의 규수’ 주프랑스공사 지낸 민영찬의 딸 민용아 소재
’조선의 두 아이’ 일제 강점기 발행 마지막 크리스마스실 도안
맨하탄 코리아 소사이어티에서 일제하 한국인 삶의 모습과 풍광이 담긴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키스의 뉴욕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간송 전형필전’으로 요즘 한국에서 뜨고 있는 미 거주 이충렬씨가 엘리자베스 키스전을 소개한다.
필자 : 이충렬
‘실천문학’ 1994년 봄호에 단편소설 ‘가깝고도 먼 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과 ‘간송 전형필’ 등이 있다. 지난 5월 출간된 ‘간송 전형필’은 청소년 권장도서와 삼성경제연구소(SERI)의 2010년 ‘CEO가 여름휴가 때 읽어야 할 도서’에 선정되었고,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지원대상도서에도 선정되었다. 현재 미 애리조나에 거주하면 글을 쓰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에 재직했던 외교관들이 주축이 된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갤러리에서, 10월 14일부터 오는 12월 2일까지 ‘동양의 창문을 통해서(Through Eastern Window)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과 한국의 모자’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 1887-1956)는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인의 삶의 모습과 풍광을 화폭에 담은 영국 화가다. 삼일운동 직후인 1919년 3월 28일에 처음 한국을 방문해 6개월을 머물렀고 그 후 1940년까지 여러 차례 더 들렸다. 그녀는 서울에만 머무르지 않고 함흥, 원산, 평
양 등 북녘도시들도 열심히 다니며 수채화, 목판화, 동판화, 드로잉 등 많은 그림을 남겼다. 키스의 작품 중 현재 전해지는 우리나라 소재 작품은 약 66점이고, 뉴욕에서의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서 키스는 오랫동안 ‘잊혀진 화가’였다. 우리나라에는 남아있는 작품이 거의 없었고,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화가가 아니라 미술사가들도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키스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한 점 두 점 수집했던 송영달 이스트 캐롤라이나 대학 명예교수의 노력으로, 2006년 9월 29일부터 이듬해 5월 6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푸른 눈에 비친 옛 한국, 엘리자베스 키스전’이 열리면서 알려졌다. 이번 코리아소사이어티 갤러리에서의 전시도 그의 주선으로 성사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16점이 출품되었는데, 모두 송 교수의 소장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돋보이는 작품은 <민씨가의 규수>와 1940년 크리스마스 실 도안으로 사용된 목판화 <조선의 두 아이>다. 키스의 화집인 <옛 한국(Old Korea, 1946년 영국 발행)에 의하면 <민씨가의 규수> 주인공은 충정공 민영환의 동생이자 제 3대 주프랑스공사를 지낸 민영찬의 딸 민용아(閔龍兒)다. 그런데 민영환, 영찬 형제는 명성황후의 조카이기 때문에, 그림 속의 여인은
명성황후의 조카 손녀(종손녀)다.
민용아는 덕혜옹주에게 손위 종질녀(외종사촌의 딸)가 되고 이런 인척관계 때문에 ‘덕수궁 유치원’과 ‘일출소학교’를 함께 다니며 ‘친구’ 노릇을 했다. 1962년 덕혜옹주 귀국 때 공항에 마중 나간 인척 중의 한명이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키스는, 이 여인의 머리 부분의 장신구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이마와 귀를 가리면서 윗부분은 드러내는 조바위와 그 앞으로 늘어뜨린 산호구슬은 당시 상류층 여인의 화려한 삶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코끝이 살짝 보이는 신발은 조선시대 상류층 부녀자가 신던 ‘운혜(雲鞋)’다. 제비의 부리같이 생겨서 ‘제비 부리신’이라도 불리는 운혜는, 겉은 분홍색 비단으로 만들고, 신의 코와 뒤꿈치에 세모꼴의 녹색 비단 혹은 붉은 비단을 바르고, 그 위에 푸른색 구름무늬를 장식한다. 여인 뒤에 있는 옥색 병풍의 그림은 <백동자도>다. 시집가서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의미로 그린 조선시대 그림인데, 그림의 격이 높아 도화서 화원이 그린 고급 병품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선의 두 아이>는 색동저고리와 꽃신을 신고 손을 잡고 있는 오누이가 정겹게 느껴지는 목판화다. 한옥 지붕 위에 앉은 잔설과 초가집 그리고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비탈길을 내려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그림은 1940년에 발행된 실의 도안으로 사용되었다. 키스는 우리나라에 올 때마다 해주결핵요양원을 운영하던 홀 박사와 교유하며, 1934년, 1936년, 1940년 크리스마스실 도안을 그려줬다. 그러나 이 그림으로 인쇄한 1940년 크리스마스 실은 일본군의 국방안보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인쇄가 끝난 후 압수당했다. 높이가 20미터를 넘는 배경의 산 그리고 일본 건국 2600 대신 표기한 1940이라는 서기연도가 문제가 되었다. 화가 난 키스는 일제의 검열 아래서는 절대 실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며 짐을 쌌으나, 홀 박사의 설득으로 화가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고쳤다. 아이들과 산 사이에 대문을 그려 넣은 것이다. 홀 박사는 일본 건국연도 대신 실 보급운동이 9년 되었다는 의미에서 ‘Ninth Year’라고 표기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1940년 실을 발행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일제강점기에 더 이상의 실은 발행되지 못했다. 그래서 키스의 판화 <조선의 두 어린이>는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마지막 크리스마스실의 도안 작품이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우리 문화를 세계 각국에 알렸다. 1940년 이후 더는 우리나라에 오지 못했지만, 광복 후 우리나라를 소재로 한 그림, 역사, 문화,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글을 함께 묶어 <옛 한국>을 출판했고, 이 책 첫 페이지에서 당시 일본에 있던 맥아더 장군에게 헌정한다고 밝혔다. 한국이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개한 나라가 아니라, 오랜 역사와 훌륭한 문화를 가진 나라임을 알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키스는 이렇게 우리나라를 사랑하다, 1958년 영국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주소와 전화번호: 950 Third Ave 8Th N.Y., N.Y 10022. 212-759-7525,
www.koreasociety.org 오픈시간: 월~금 오전10시~ 오후5시.
<조선의 두아이> 혹은 <두명의 한국 아이들>, 다색 목판화, 337.7 x 22.2cm, 1940년
<민씨가의 규수>, 동판화, 37.1 x 23.8cm, 1938년 <신부>, 동판화, 37.1 x 23.8cm, 1938년<사진 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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