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웨이(Driveway) 끝에서 현관으로 들어가기 위해 좌회전해야 하는 곳에 몇 년 전 첫 손자 생일 기념으로 소나무 한 그루 심고 그 밑에 일본 단풍나무(Japanese Maple) 두 그루를 심었다. 단풍은 아래로 옆으로만 자란다. 무더운 한여름 소낙비가 쏟아진 후 너풀너풀 무성하게 자란 잎에, 구르는 물방울이 있으면 시원하게 느껴질 것 같아 보라색 나팔꽃과 표주박 씨를 구해서 심었다. 약 2주 정도의 시일이 지난 후 나팔꽃은 뿌리가 빨리 내려 우측(右側)으로 비비 꼬이면서 육척 높이의 철제 격자 울타리, 트렐리스(Trellis)를 타고 잘도 올라가고 있다. 같은 높이의 것을 2개 약간 각을 지워 세워 놓지 않았더라면 무성하게 자란 잎의 무게를 지탱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옆에 바짝 붙어서 같은 높이의 육송으로 된 트렐리스 밑에 표주박을 심었다. 나팔꽃보다는 성장속도가 늦은 듯 안타까울 정도로 천천히 자라고 있지만 그래도 때 맞춰 이곳저곳에서 박꽃과 흡사한 꽃이 피고 진 다음 껍질 까지 않는 땅콩 모양을 한 앙증스런 표주박이 열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신기하다. 앳된 표주박이 트렐리스에 조롱조롱 매달려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요즘 일과의 시작이다.
들창을 통해 내려다보면 자랄수록 허리부분이 잘록해지면서 잎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굿 모닝’ 인사를 한다. 거의 흰색에 가까운 연두색을 띈 표주박, 다섯 개가 사이좋게 조롱조롱 열려서 잘도 자라고 있다. 마치 우리 가족 같다. 첫 번째 열린 것은 허리부분이 길게 늘어져 있어서 산속 옹달샘 맑은 물 떠 마시기에 안성맞춤이다. 나머지 세 개는 손으로 빚어 놓은 것처럼 어쩌면 저렇게 생겼을까. 튼튼하게 잘도 자라고 있다.
그런데 딸집에 가서 주말을 지나고 와서 보니 이게 왠 일, 셋 중 하나에 벌레가 새카맣게 붙어 있다. 너무 놀라고 급한 마음에 수돗물을 계속 뿌렸다. 그 벌레는 물을 몹시 싫어하는 듯 잎사귀 뒤로 숨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한 두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나타나서 표주박에 붙어 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얼마나 열이 나는지 화원으로 바로 달려갔다. 그림도 예쁜 광고문을 읽으며 웬만한 벌레는 다 죽겠구나 생각하며 벌레야 죽어라 신나게 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 저려올 때까지 거의 약 반통을 다 뿌렸다.
광고에 거짓이 없다면 벌레는 하얀 복부를 위로 하고 땅에 떨어졌어야 한다. 그러나 그 근처 어디에도 벌레의 죽은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일간지에 사진과 함께 난 기사를 읽으니 그 벌레의 정체가 노린재(Syromastes Marginatus)라는 것을 알았다. 98년도 펜실베이니아 알렌 타운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에 이 벌레 즉 노린재에 대한 축적된 연구결과가 아직 미국에는 없다고 한다.
농작물의 피해가 많은 모양이다. 그러니 효과도 없는 그 약을 신나게 뿌려 놓았으니 표주박 표면에서 스며든 약으로 인해 시들시들 그 예쁜 표피가 변색돼 가고 있다. 눈물을 머금고 둘은 잘라버리고 셋 남은 표주박 중 맨 나중에 나온 것, 애기 주먹만 하게 자란 것을 전망이 좋은 곳으로 옮기느라 트렐리스 위로 넘겼다 내렸다 하며 이리저리 옮기면서 넝쿨이 당겨졌는지 뚝 소리가 나더니 넝쿨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제 10월로 접어들고 장대같이 쏟아진 비가 내린 다음 날 밖에 나가 보니 이 놈의 노린재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약을 그렇게 뿌리지 않았더라면 표주박 다섯 개가 조롱조롱 열려 있을 모습 보며 얼마나 마음 흐뭇해했을까. 그러기에 누가 말했던가.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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