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얼마전에 오페라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와 합창곡을 78개나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노래를 하나씩 들으니, 오래 전에 있었던 기억들이 나의 머리속을 가득히 채워주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가슴을 울린 것은 어려서 우리가 불렀던 ‘사냥꾼의 합창’을 들을 때였다. ‘….. 사냥의 기쁨을, 무한한 힘과 생명이 넘쳐흐른다. …… 랄, 라라, 랄, 라라, 라랄라, 라랄라, 라랄라, 라랄라, 랄 라라랄,라, …. ‘ 음악을 들으면서 어린 시절의 시골학교와 선생님 한 분의 얼굴이 아련하게 떠 올랐다.
내가 1.4 후퇴 때에 서울에서 시골로 피란을 가, 그 해의3학년을 건너뛰고 4학년에 전입을 하였던 학교는 ‘천안 제일국민학교’였었다. 어쩐 일인지 그 곳에는 ‘제이 국민학교’, ‘제삼 국민학교’라는, 어른들이 가지고 있던 상상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한 이름의 초등학교들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제일국민학교가 우리는 제일 좋은 학교라고 굳게 믿으면서 자부심을 갖기도 하였다. 남학생이 세 반, 여학생이 한 반 밖에 없던 그 학교에서4학년여학생반을 담임하시던 정선생님은 계속해서 5학년의 담임을 맡아주셨다. 학습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셨던 정선생님은 학교가 끝났어도 한 시간씩 우리 여학생반 전원에게 음악을 별도로 가르치셨다. 그러니까 우리는 학교에서 배당된 시간이외에 한 시간을 더 공부하느라고 학교에 남아있어야만 하였다.
우리가 배운 것은 5선지를 그리고 악보를 베끼고, 악보에 나오는 모든 부호들을 이해하고 외우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하루는 정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제는 악보를 보는 것 보다는 더 재미있는 합창을 배우기로 하자’ 그러나 합창인들 아이들에게 재미가 있을리는 없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하였다. 그 때에 우리는 악보를 보면서 오페라에 나오는 합창들을 한국어로 불렀는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사냥꾼의 합창’이다.
그 다음에 정선생님이 만든 것은 ‘하모니카 밴드부’였다. 나는 하모니카가 그렇게 여러 모양과 크기로 다른 음색을 낸다는 것도 그 때에 처음 알았다. 우리는 이미 정 선생님이 훈련하신 덕분으로 악보를 읽으면서 하모니카를 불었다. 밴드부는 큰 북과 작은 북, 심벌즈와 트라이앵글 까지 갖추고 여러가지의 행진곡을 연주하였다. 잘 생긴 군악대가 세련되게 행진을 하면서 들려주는 행진곡들은 우리가 어린시절에 하모니카로 불렀던 곡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행진곡을 들으면 행복한 생각에 젖어들기도 한다.
우리가 경연대회에 나가거나, 멋진 곳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였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 당시 다른 학교에도 밴드부가 있을리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밴드부가 다른 학교와 겨눌 수는 없는 것이다. 아마도 연주를 하였다면, 우리의 밴드부가 있게끔 허락을 하셨던 교장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해마다 있었던 운동회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많은 행진곡을 연습하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정 선생님은 우리의 메마른 마음속에 물을 주고 음악을 심어놓았다. 어찌 정 선생님 뿐이랴. 그 어려운 피란시절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전국으로 흐터져 어린 새싹을 땅에 심고 가꾸었을 것이다. 메마른 땅에 거름을 주고 새싹들이 자랄 수 있도록 그 터전을 닦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뿐만 아니라, 중 고교에서도 많은 아리아를 접하게 해 주셨던 음악 선생님도 더불어 생각 난다.
우리의 연약한 마음을 붙들고 앞길을 바로 잡아 주었던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찌 나 혼자 뿐이랴. ‘사냥꾼의 합창’을 들으며 선생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