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스페인 중북부의 고도, 세고비아(Segovia)에 왔습니다. 세고비아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던 때가 있었습니다. 클래식 기타의 신이라고 일컫는 ‘안드레 세고비아’의 연주에 취했던 젊은 날의 이야기이지요. 그가 켜던 스페인소야곡, 바하의 변주곡들, 그리고 알함브라의 궁전의 추억을 들으며 새털같이 가볍거나 깊이를 알 수 없는 저음의 공명 속으로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는 기타를 집시들의 플라멩고 반주 악기에서 클래식음악의 독주악기로 중앙무대에 올려놓은 장본인입니다. 그가 1987년, 94세로 타계하기까지 기타의 여섯 현이 뿜어낼 수 있는 최상의 음역과 애잔하면서도 심오한 영혼의 소리를 재창조해낸 그의 예술가 적 역량과 상상력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의 멘토인 토로바가 그를 위해 작곡했다는 소나티나를 들으며 세고비아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세고비아 - 카스티야 지방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인구 5만 남짓한 도시는 기타의 거성과는 별 연관이 없음을 여기 와서야 알았습니다. 안드레 세고비아는 그가 음악적 영감을 받은 그라나다가 터전이었다고 합니다. 세고비아의 뜻이 시에그(Sieg), 즉 승리란 설명을 듣고 이곳이 구아다라마 산맥 해발 1000m에 자리잡은 옛 요새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K형, 밤새 비가 그치고 청명한 아침, 도시 서북쪽 끝 언덕높이 솟아있는 알카사르 성채로 올라갑니다. 훗날 디즈니 백설공주 성의 모델이 되었다는 이 우아한 성채가 햇빛을 받아 황금 관처럼 빛납니다. 우리일행은 성문까지 가파른 산책로를 올라갔습니다.
성안엔 12세기 회교도로부터 국토회복운동을 이끌었던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 부부의 유물들로 가득했습니다. 무데하르 양식으로 꾸며진 성채 안에서 여왕의 왕좌, 기사들의 갑옷들을 둘러보다가 옥상에 올랐습니다. 눈앞에 카스티야와 레온지방의 전원이 풍경화폭처럼 펼쳐집니다. 그들이 평화의 수호자로 추앙 받는 이유가 이 목가적인 풍경을 지켜낸 공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후엔 도성 남쪽광장에서 로마시대가 남겨놓은 가장 뛰어난 건축물인 수로교 (Acueducto)를 만났습니다. 그 연대와 규모와 건축술에 놀랍니다. 로마황제가 1세기말에 지었으니 2000년도 넘는 세월을 서있는 셈입니다. 시에라 강물을 시내로 끌어오는 수로로 전장이 728m, 높이가 28m, 167개의 균형 있는 아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회반죽을 전혀 사용치 않고 20,000여 개의 화강암 덩어리로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화강암을 네모꼴, 혹은 세모꼴로 잘라 각도를 맞춰 층층이 쌓아올렸습니다. 특히 서로 견고하게 지탱해주는 힘만으로 아름다운 아치를 이룬 것은 공학과 미학이 합작한 예술품입니다. 2천년 세월을 틈새하나 벌어지지 않고 벼텨온 돌을 쓸어봅니다. 장인들의 체온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K형, 고대로마의 상 하수시설은 경이로운 세계유산에 속하지 않습니까? 당시 인구 100만이 넘던 로마는 11개의 수로를 만들어 상수를 공급했다지요. 로마장군 프론티누스가 설계한 시설들이 전 로마제국으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세고비아의 수로교도 그의 유산인 셈입니다.
수로교 앞에 있는 새끼돼지 통구이 집에 들렸습니다. 관광명소로 소문난 이곳은 익은 맛과 고풍의 전통을 잘 살려내고 있었습니다. 노 주인이 훈장을 단 정장을 입고 익은 고기를 자른 뒤 접시를 던지는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페인에는 클래식 기타와 왕권과 건축물과 음식의 전통이 곳곳마다 살아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세고비아의 ‘아스투리아스’가 흘러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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