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한국에 가족도 형제도 없어서, 고국을 방문하는 일은 외국을 방문하는 기분이다. 한국에서 친구들과 함께 모이면 으례 술잔이 오간다. 무엇을 위한 술자리인지 모두들 잔을 들고서 “위하여!”라며 잔을 부딪친다. 지난 12월 7일 연합 뉴스는 “한국 여성 음주 증가율 세계 평균의 28배”라는 제하에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술을 권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한국에서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회식 자리에 참석해야한다. 계속 불참하면 동료 직원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한다면,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체질적으로 술 한방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로서는 벌써 속세를 등졌을 것이다.
일본 토쿄의 지하철을 주중 저녁 때 타보면, 여기 저기 얼굴이 붉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자제할 만큼 마셨는지 조용하다. 그러나, 한국 지하철에서는 붉은 얼굴에 욕설이나 고성방가하는 사람들을 본다. 도가 좀 지나친 사람들이다.
한번은 고국 방문 단풍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오랫만에 다시 보는 고국이라 새롭기도했고, 옛일을 돌이켜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참가자들 모두 미국의 이곳저곳에서 뭘해먹고 사는지, 오랫만의 고국 방문을 통해 잠시 시름이라도 잊으려는 듯했다. 여행 가이드는 준비해온 두꺼운 종이 뭉치를 들고서는 한장씩 넘기면서 읽는다. 역사나 사회 변화에 관한 현대사 소개보다는 모두 음담패설이다. 심지어는 제주도의 한 처녀 가이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침부터 시작했다. 다 들어본 야한 이야기들이라 어지간한 농도로는 재미가 없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일이 실수였나?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할 오락 시설이 없으니까 온통 그런 이야기만 들려주면서 속으로는 자신들이 챙길 것을 챙긴다고 한다. 동남아를 가도 심하다고 한다. 한국은 문명으로는 OECD 회원국으로 가입할 정도이지만, 문화는 제자리 걸음이다.
음주로 인해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는, “술 취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교수가 여제자와 술을 나눈 후, 호텔에 투숙해서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서도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을 하는 기사를 많이 접해왔었다. 기억은 안난다고해도 범행은 이미 저질러진 것이다. 교수를 따라간 여제자도 문제이지만, 교수가 학점을 내세워 제자에게 추태를 부린다는 일은 저속하기 짝이없다.
이러한 한국 사회 풍조를 익힌 외국인이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놀라게도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업자득이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이 되질 않는다. 지난 11월 30일자 연합 뉴스에 의하면, 미국에 교환 학생으로 간 어느 한국 여대생을 성폭행하려던 한 백인이 최근 한국의 유명 사립대의 교환 학생으로 방문했다가 덜미를 잡혀 구속된 사실을 보도했다. 이 백인은 지난 6월 한국인 여대생을 자택으로 유인해 강제로 욕보이려다 강한 반발로 미수에 그쳤다. 한인 여대생은 피해 직후 하와이 경찰에 신고했으나 귀국일이 임박해 법적 절차를 포기했다고 했다. 이 미국인 피의자가 교환 학생으로 국내에 들어온 사실을 알게된 여대생은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그를 구속되도록 했다. 혐의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던 이 미국인은 판사 앞에서 급기야 “술에 취해 기억이 안난다. 선처를 바란다”고 했다. 아마도 한인 변호사가 그렇게 답변 코치를 했으리라. 취객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너그러운 나라가 있다면 한국이라 하겠다.
년말년시를 맞아 이런저런 사유로 술자리가 마련될 것이다. 음주 운전은 물론이려니와, 손님 접대, 회식 등의 많은 자리에서 도가 넘치는 음주는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도 불확실한 경기 회복의 안개 속에서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나이만 한살 더하고 있다. 올 연말은 주색에 빠지는 연말이 아니라 주색으로부터 깨어나는 연말이 되도록노력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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