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2일 시작해서 6월7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제13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Van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를 인터넷으로 지켜보며 무한한 감동의 순간들을 즐겼다. 그 17일 동안 나는 홀로 밤을 지세며 나만의 음악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는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폴란드의 쇼팽 국제 콩쿠르,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의 모든 피아니스트들에겐 꿈의 경연대회다. 미국 텍사스 태생의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반 클라이번이 1962년에 창설한 이 대회는 4년에 한 번씩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개최, 그간 수많은 월드스타들을 발굴해 냈다.
대회 내내 나는 손에 땀을 쥐며 1차 예선 결과를 내 나름대로 뽑은 피아니스트 목록과 비교도 해보았고, 순간순간 들리는 실수에 안타까움을 토하기도 했으며,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을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 반성의 시간도 가졌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보다가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피아노 뚜껑을 열고 건반을 두들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 225명의 지원자들 중 157명이 각 나라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예선전에서 경쟁했고, 거기서 뽑힌 29명의 피아니스트들이 경합을 벌였다. 각각 한 시간가량 되는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누가 뽑힐까 하는 기대감에 잠을 설치고 본 1차 선발에서 나를 사로잡은 피아니스트는 단연 시각장애 일본인 피아니스트, 노부유키 쓰지(20)였다.
그의 연주를 보며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일까. 눈을 감고도 들어보고 뜨고도 관찰해 봤지만 장애인이기에 받는 ‘알파’ 점수로 뽑힌 피아니스트가 아니라는 걸 처음 5초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모든 음악을 연주 실황이나 음반을 통해 듣고 외워서 연주한다는 그의 탁월함은 실로 전 세계 음악인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금메달(1위)을 차지했다.
특히 준 결선에서는 또 다시 한 시간 분량의 독주와 실내악 연주를 주최 측에서 지정해준 연주자들과 연주해야 되는데, 앞을 보지 못하는 그에게는 정말로 최고의 고비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지휘자 없이 연주해야 하는 소그룹 앙상블이기에 서로 보면서 연주한다 해도 맞추기 어려운 실내악. 스찌는 슈만의 피아노 5중주 작품 44번을 환상적으로 연주해 주었다. 수만개의 ‘안테나’가 그의 피부에서 나와 다른 연주자들의 마음을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결선의 마지막 개인 연주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는 “천재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2009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중국의 하오첸 장(19)이 일본인 스찌와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고, 자랑스러운 한국인 피아니스트 손열음(23)은 2위(은메달)를 수상함으로 막을 내렸다. 3등 동메달은 수상되지 않았다.
이번 콩쿠르를 보며 진주를 떠올렸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29개의 진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진주 목걸이였다. 광물성 보석과는 달리 생명체가 만들어 내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보석인 진주. 이물질이 들어온 후 아픔을 품고 견딘 후에 조개가 만들어낸 진주처럼, 클라이번에 뽑혀 연주를 해준 29명의 연주자들은 그 고통의 시간을 인내했기에 아름다운 진주와 같은 연주를 해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크고 귀한 ‘흑진주’와 같은 피아니스트인 노부유키 쓰지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내게 값진 레슨을 준 그의 연주에 감사한다.
앤드루 박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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