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하얗게 눈이 쌓여 있던 넓은 운동장. 그 운동장 너머 분수대를 에워싸고 있는 나무들 위에 반짝이던 트리 장식들. 추운 기운조차 살그머니 덮어버릴 것같던 그 고요 속에서 하얀 눈으로 어스름해진 운동장. 교실을 등지고 바라봤던 그 교정은 제 기억 속의 한 점의 그림입니다.
고3 그 시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그 길고 길었던, 책과 씨름하던 그 시절. 소심한 반항인양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교정을 거닐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은 가쁜 숨을 뱉어내고 다시 열람실의 제자리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졸업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제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스승이 많아진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지요. 친구, 직장 동료, 선후배들, 가족, 이웃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나보다 나은 점을 보고 배우고, 또 혹시라도 부족한 면을 발견하면, 반면교사로서 또 다른 배움을 쌓아갑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책으로부터, 경험으로부터 배우며, 한편으로는 남에게 배움을 전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선생님…이란 말을 되뇌면 떠오르는 얼굴은 바로 선생님뿐이니까요. 매순간 최선을 다해 교단에 서 계셨던 모습, 인자한 웃음과 동시에 사려 깊은 단호함.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던 선생님.
제가 배웠던 시 한 편, 수학 공식, 그리고 영어 단어들은 학교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것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학교, 교정, 교실, 칠판, 책상, 걸상… 그리고 친구들과 선생님.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문학작품 속의 행간의 의미처럼, 그렇게 ‘배움’이란 것이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머물렀던 그 공간과 시간. 다시 오지 않을 너무나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렇게 듣기만 해도 반가운 학교와 선생님의 소식을 얼마 전 인터넷 신문 기사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학교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계신 낯익은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공교육을 바로세우겠다며 쏟아내는 여러 정책들은 미봉책조차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사교육비 걱정에 학부모는 등이 휘고,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자기 아이만 뒤쳐진다는 생각에 그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모의 맘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에 뒤처지고, 또 무엇에 앞서기 위한 경쟁인지요. 그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과연 인생에서의 승자를 의미하는지요. 아닐 것입니다. 제가 학창시절 느꼈던 진정한 배움에 매진하기 위함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공교육이 무시되고, 너나 할 것 없이 사교육에 전력을 다하는 지금. 오늘도 묵묵히 교단에서 분필가루를 마시며, 학생들을 진지한 눈빛으로 가르치고 계실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작금의 현실을 안타까워하실 선생님의 고뇌 또한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옳지 않은 것을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으니까요.
시대에 ‘적절’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소설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말이 떠오릅니다.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 옳았는지, 혹은 옳은지 자명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까지, 진정한 교육을 위해 힘쓰는 선생님과 부모,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담보로 불안한 맘을 달래며 책상을 지키고 있을 학생들. 그들의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스승의 날을 맞아 멀리서나마 선생님께 제 깊은 감사의 맘을 띄웁니다.
김진아/ 캠벨 이웰드 시장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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