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퀴즈를 한 번 내보자. 한국에 존재하는 수천, 수만 가지 직업군 중에 1920년대 초부터 97년까지 8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단 5명만의 여성을 배출한 분야는? 정답은 ‘영화감독’이다.
‘세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그리고 지난해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은 22일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자신이 한국에서 “장편 영화를 만들어 개봉한 6번째 여성 감독”이라고 소개했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모든 분야에 여성들의 등장이 일반화되던 시기까지 말 그대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인원에 불과했다는 것은 한국의 영화판(특히나 제작분야)이 얼마나 오랫동안 남성 중심적인 마초의 세계였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임 감독은 그러나 자신을 ‘이전과는 다른 경로로 순탄하게 입문한’ 감독이라고 말한다. 남자들도 중간에 줄줄이 포기하는 혹독한 도제 시스템을 거쳐야 했고, 술 잘 마시고 음담패설 잘해야 했고, 심지어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서 레디 고를 외쳐야 했던 선배들에 비하면 주목받은 단편 영화로 데뷔한 순탄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단 감독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편견과 차별과 싸워야 했지만 임 감독 같이 뚝심 있게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냈던 선배들 덕분에 90년대 후반 이후 20명 가까운 신예 여성 감독의 등장이 가능했다.
임 감독은 이날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2001, 52분)’을 통해 남성 중심의 사회 속에서 여성 영화인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묘사함으로써 그동안의 여성 영화감독들의 노고를 보여주었다. 비록 연출을 맡았기 때문에 임 감독 자신은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지 않지만 바로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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