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안 좋아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예전에 비해 할인 쿠폰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을 넘기다 보면 온통 할인 쿠폰인 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불황 타파 세일’이니 ‘불경기 특가’라는 할인 행사들이 이 어려운 시기를 다 같이 힘내서 잘 이겨보자는 외침 같아 나름 기분이 좋기도 하다. 한편 이런 불경기에도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은 여전한지, 화장품이나 스킨케어 광고는 더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는 것을 두려워한다. 늙지 않기 위해 피부 관리를 받고 고가의 화장품을 바르고 건강 보조제를 먹는다. 어쩌면 죽음보다도 노화에 대한 공포가 더 큰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이 듦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멋지게 노년의 삶을 구가하는, 그래서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이상적인 모델을 발견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우연히 책장에 꼽혀있던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인연’에 눈길이 갔다.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읽고 십 몇년 만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접하게 된 수필들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주옥같은 글을 남긴 피천득 선생의 삶이 궁금해졌다. 부끄럽게도 그 때까지 난 선생이 재작년에 타계하신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의 생전에 쓰인 몇몇 기사를 보며 그가 정말 존경스러웠다.
선생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부자는 돈이나 재산이 많은 사람이 아니에요. 추억이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지요. 파리의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세운 것이지만 그의 것이 아니라 그곳을 거니는 연인들 것이거든요. 꼭 좋은 그림을 소유해야 행복한 것도 아니죠. 기억 속에 넣어두면 됩니다”
인터뷰 당시 그는 96세였는데 그의 소박한 아파트에는 이웃에서 버린 것을 가져온 식탁과 짝이 안맞는 의자, 낮은 테이블이 전부였고, 못질을 하면 이웃이 시끄러워 할까봐 복제품 르누아르의 그림은 투명 테이프로 붙여있었다 했다.
딸이 가지고 놀던 인형을 일주일에 한번 목욕 시키고 밤마다 눈을 감겨 재우며, 선물 받았다는 곰 인형은 밤마다 선생이 눈가리개를 씌워 편안하게 재웠단다. 한국에 이렇게 인형놀이를 하며 즐거워할 성인 남자가 몇이나 될까.
정정하고 청력도 좋아 대화할 때 목청을 높일 필요가 없었고, 유머 감각도 좋을 뿐더러 대화중에 무엇을 가르치거나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이 없어서, 인터뷰 내내 즐거웠다고 기자는 썼다. 그의 교제관계도 아이 같아서 청탁성 등 이해관계나 명함에 적힌 직함으로 누굴 만나지 않았고, 그저 함께 해서 즐겁다면 누구와도 만났다고 했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내 삶과 똑같은 생을 살고 싶어요. 공부하고 가르치고 내가 느낀 아름다움을 글로 남기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사람,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는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죠”
브람스의 음악을 듣고, 같이 늙어가는 제자들을 만나 데이트를 하고, 예쁜 여자를 보면 기쁘고 행복하다는 피천득 선생. 그분은 소년처럼 무구하고 신선처럼 가벼워 보였다고 한 작가는 회고했다. 후배들에게 “저렇게 잘 늙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주신 선생을 책으로나마 뵙고 나니 이제 늙는 것이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늘 근심 걱정에 가득차 한숨만 쉬는 이들은 나이가 몇이건 노인이고, 이렇게 키득거리며 즐겁게 사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언제나 청춘이고 매일이 찬란한 봄”이라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지니 조/ 버진 모바일 힐리오 마케팅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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