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초 한국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 변종곤 화백의 브루클린 스튜디오를 찾았을 때 갑자기 아카데미상을 받은 애니메이션 ‘월리(Wall-E)’의 창고가 떠올랐다. 월리는 지구에 혼자 남겨진 쓰레기를 수거하는 로봇이다. 매일같이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치우면서 자신의 관심을 끄는 물품들을 따로 수거해 자신의 창고에 차곡차곡 보관한다. 월리의 창고에는 작은 액세서리, 라이터, 동전, 구두 등 그야말로 수만 가지 잡동사니들이 있지만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것이 아니고 잘 정리’되어 있다.
변 화백의 스튜디오에도 어림잡아 수천가지 이상의 ‘물건’들이 모든 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다만 월리의 창고와 가장 큰 차이는 스튜디오에 있는 물건들이 대부분 잡동사니가 아닌 작가의 작품이자 작품을 위한 오브제라는 것이다. 벼룩시장에서 구해온 작은 소품이나 혹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주운 물건에까지 작가는 이야기를 발견해내고 이 물건들은 스튜디오에 놓이는 순간 완벽한 장식품으로서 기능한다.
참 재밌는 공간이다. 그리고 작가는 실제로 ‘재미’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부르클린이 재밌는 곳이라서 떠나질 못합니다.” “사는 게 재밌고 작업하는 게 재밌어요.” 실제 자기 나이보다 최소한 15년 이상 젊어 보이는 이유도 그가 뉴욕 생활을 30년 가까이 했지만 여전히 처음처럼 이곳의 공기에 흥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청담동 ‘칼럼스 갤러리’에 전시될 작품들은 몇 년째 계속 발표하고 있는 그의 ‘현악기 연작’을 중심으로 20여점이 될 예정이다. 바이얼린과 첼로 등 현악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동기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캔버스라는 고정된 프레임 안에 갇히고 있다”는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작업하다 보니 더 어렵지만 훨씬 재밌었다. 바이얼린(첼로)는 여성의 몸을 연상케한다. 섬세하게 여성의 몸에 타투를 작업하듯 육감적인 느낌으로 그림을 그렸다. 또한 작가에게는 바이얼린이라는 틀은 완벽한 조형이기도 하다. 그림이 아무리 좋아도 틀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에는 그가 사랑하는 브루클린의 풍경이 담긴 것도 있고 무너지는 마천루 등 오랫동안 그가 천착해 온 주제인 문명에 대한 비판도 살아있다.
미술 시장이 최악인 상황에서 전시를 하게 됐지만 작가는 “힘들고 추울 때 사람의 감각이 예민해 지듯이 어려운 외부 조건에서 그림을 보는 눈은 더 열리게 되어있다”며 “결국 그림을 그리면서 작가가 얻는 최고의 보상은 정신적인 향유”라고 느긋해 한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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