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½(5개 만점)
앙숙관계 산업스파이로 만난 두 남녀
서로 각기 경쟁관계에 있는 대기업체의 산업 스파이로 일하는 두 남녀의 로맨스와 사기와 두뇌 싸움과 기업체의 탐욕 등을 두루 엮은 로맨틱 코미디이자 기업 스파이 극으로 지적이고 위트와 유머를 간직했으며 또 세련됐고 활기차다. 비폭력적인 것도 장점.
줄리아 로버츠가 오래간만에 주연으로 컴백한 영화로 그의 상대역은 ‘클로서’(2004)에서 공연한 클라이브 오웬인데 둘의 화학작용이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 둘이 나누는 코를 톡톡 쏘는 재치 있는 대사와 서로 사랑하면서도 결코 먼저 사랑을 고백하지 않는 감정적 힘겨루기 그리고 야유와 농담과 전류가 흐르는 기 싸움이 마치 1930~40년대 유행한 스크루볼 코미디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플롯이 다소 지나치게 배배 꼬인데다가 시간대를 마구 오락가락하면서 얘기가 진행돼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은 것이 탈.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면 끝에(진짜로 맨 끝에 가서야 누가 승자인지가 밝혀지는데 그것이 참 아이로니컬하다) 가서 모든 것이 밝혀지긴 하나 글을 쓰고 감독한 토니 길로이(‘마이클 클레이턴’)가 너무 재주를 부린 느낌이다.
오프닝 크레딧 장면이 재미있다. 원수지간이다시피 한 대기업체인 버켓 & 랜들의 회장 하워드(탐 윌킨슨)와 옴니크롬의 회장 딕(폴 지아매티)이 각자 자신들의 전용 제트기와 회사 간부들이 서 있는 비행장에서 마치 아이들처럼 주먹다짐을 하는 장면을 찍은 슬로모션 장면부터 영화 전체의 재미와 장난치는 듯한 분위기를 감지케 한다.
이어 장소는 두바이. 영국의 첩보부 MI6 요원 레이(오웬)와 CIA 요원 클레어(로버츠)가 한 파티에서 만나 마치 적을 향해 총탄을 쏘는 듯한 희롱의 대화를 주고받은 뒤 함께 침대에 든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08년. 둘은 뉴욕에서 재회하는데 클레어는 자기에게 말을 건네는 레이를 전연 모르는 사람이라고 오리발을 내민다. 이와 같은 장면이 그 뒤로 시간과 장소가 바뀌면서도 여러 번 재연된다.
둘은 모두 정보부를 떠나 각기 수입이 좋은 상기 두 회사의 산업 스파이로 일하고 있다. 본격적인 산업 스파이전은 B&R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전대미문의 화학제품을 생산할 준비가 돼 있다는 발표를 한다는 정보가 둘에게 입수되면서 시작된다. 이 정보를 빼내려고 혈안이 된 회사는 물론 옴니크롬.
둘은 각기 서로의 회사를 위해 경쟁회사를 상대로 교란작전을 펴는 척하면서 실은 이 화학제품의 공식을 빼내 스위스로 튀어 일확천금을 벌자는 음모를 꾸민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내내 둘이 진짜 공범인지 아니면 라이벌인지를 분간할 수 없게 플롯을 교묘하게 짰다. 둘은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또 서로를 잘 알면서도 쉽게 믿으려고 하지를 않아 그 관계가 마치 적간의 애정처럼 그려졌다. 둘이 기지와 사랑의 싸움에서 서로 자기의 약점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맞서는데 그런 충돌에서 흐르는 전류가 짜릿짜릿하다.
길로이의 영리하고 확신에 찬 연출이 돋보이는데 로마, 스위스, 바하마, 런던, 뉴욕, 샌디에고 및 두바이 등지를 무대로 펼쳐지는 철저한 사기극이다. PG-13. Universal. 전지역.
적인지 동지인지 관계가 알쏭달쏭한 클레어(왼쪽)와 레이.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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