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읽다보면 절로 한숨이 나오고 때론 나도 모르게 혀를 차게 된다. 지면 가득 어찌나 ‘꿀꿀한’ 소식들 뿐인지. 아홉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가고 자살한 살인마 소식, 불경기 때문에 주립대학 문턱이 점점 더 높아만 간다는 이야기와 바닥을 치고도 계속 땅속으로 파고드는 부동산과 주가까지…눈을 씻고 찾아봐도 무엇 하나 희망적인 뉴스가 없다. 이럴 때 희망의 뉴스를 선사한 건 고국에서 온 한 합창단이었다.
지난 4일에서 7일까지 필자는 오클라호마 시티에 머물렀다. 미국 합창 지휘자 협회(ACDA)에서 주관하는 컨벤션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는 ACDA는 오클라호마 시티에 본부를 두고 그간 2년에 한번씩 전세계 유수의 합창단들을 초대해 미 전역 주요 도시를 돌며 컨서트를 열며 세계 합창발전에 이바지 해왔다. 매번 각지에서 모여든 합창 지휘자들과 애호가들만 5000명 이상됐고 세계적 수준의 합창공연들을 관람하고 평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LA를 출발하기 전 나를 비롯해 이번 여행길에 오른 몇 몇 한인 지휘자들은 특별한 설레임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이번 컨서트 프로그램에 인천시립 합창단(지휘자/ 예술감독 윤학원)이 초청되어 공연을 선보이기 때문이었다. ACDA가 생긴 이래 한국 단체에게 보낸 최초의 초청이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팀은 인천 시립 합창단의 공연이었다. 기대를 하기는 했지만 바로 내 앞에서 뻗어 나오는 그들의 우렁찬 울림은 내 머리에서 발 끝까지 온 몸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빅센터를 가득 매운 외국인 관중들이 열광하고 있었다. 보통 아주 잘하는 합창단에게는 연주가 다 끝난 후 기립박수를 쳐주기도 하는데 윤학원 교수가 이끄는 인천 시립은 첫 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객 전원이 일어나 환호하는 것 아닌가. 그것도 첫 곡이 우리의 작곡가 우효원씨가 아리랑을 주제로 작곡한 순수 우리곡 ‘메나리’라는 곡이었기에 더 의미있었다.
프로그램에 반드시 미국 작곡가의 곡이 들어가야 된다는 룰 때문에 Whitacre의 ‘When David Heard’를 부른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곡들은 전부 우효원씨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합창단의 탁월한 합창과 더불어 대한민국 작곡가의 뛰어난 작품에 우리 모두는 반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 합창계의 대부 마에스트로 윤학원의 지도력과 예술성은 미국과 한국을 넘어 세계인들을 매혹시켰고 매 곡이 끝날 때마다 참석자 전원이 기립해 그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WBC 지역예선에서 일본을 이기고 조1위로 결정되었을 때 또는 월드컵 4강의 신화를 통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었을 때 느끼는 희열과 그 연주회날의 희열이 무엇이 다를까?
마에스트로 윤은 젊고 유능한 우리의 작곡가들을 발굴해 우리 민족의 선율과 리듬 그리고 혼을 현대 감각과 조화시켜 우리의 소리를 알리는 일에 평생을 바쳐왔다. 음악인이기 이전에 그는 우리민족의 음악을 알리는 애국자였다.
그들의 선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클라호마에서 공연을 마치자마자, 잠 한숨 못자고 LA에 도착, 한국일보 주관으로 윌셔 이벨 극장에서 또 한 번의 공연을 선보였다. 그곳을 가득 메운 LA 교민들에게 그들의 값진 음악을 선물했다. 요즘처럼 마음이 허전한 시기에 그들의 피와 땀 그리고 예술 혼이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는걸 그들도 알고 있을까? 누군가를 감동시킨 음악인들, 그들의 앞날을 축복한다.
앤드루 박
피아니스트/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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