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 제일 인기 많은 아이돌 그룹 중에 하나인 ‘소녀시대’의 멤버가 아홉 명이란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그 아이들은 도대체 수입을 어떻게 나눌까? 벌이는 되나?’ 하는 지극히 아줌마다운 고민을 아주 잠깐 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아홉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는 사람들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나마 멤버들의 얼굴과 이름을 매치시킬 수 있는 그룹은 ‘서태지와 아이들’, ‘H.O.T’, ‘핑클’ 에서 끝나버리고 그 후 거의 십년간 피고 졌던 수많은 아이돌 그룹은 정말 이름도~ 몰라요~성도 몰라.였다.
그런데 낼 모레면 마흔 고개를 넘어가는 이 아줌마가 드디어 아이돌 팬이 되었다. 이 아이돌의 이름은 ‘김현중’ 이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보는 사람이라면 아시겠지만 주인공 중에 한명으로 나오는 가수 겸 탤런트다. 그룹 이름도 영 이상한 ‘SS501’에 리더라는데 드라마 방영 전에는 이 그룹의 노래를 들어본 기억도 없다.
정작 팬임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제대로 들어본 노래도 없고, 그룹 멤버가 다섯 명이라는데 이제 겨우 두 명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저저이 많은 수많은 아이돌 중에 그 애가 그 애가 아닌 한 사람의 아이돌로서 이 어린 친구를 기억하게 됐다는 건 아줌마에겐 지각변동할 일이다. 이미 나이 들어 주책 부린다고 남편한테 면박도 받았고, 혼자 생각에도 이건 아니다 싶은데도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아주 옛날 누군가의 팬이 되어 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한창 사춘기 시절, 극장에서 ‘영웅본색2’를 보고 난후 극중에서 전화기 박스 안에서 죽어간 홍콩배우 ‘장국영’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문방구에서 인기스타 사진을 책받침용으로 팔던 시절이었는데 ‘장국영’의 사진을 사러갔다가 그냥 돌아오기를 몇 번을 했었다. 고지식하기가 이를 데 없던 때라 스타의 사진을 책받침으로 쓴다는 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은 사진 한 장 못 사고 그렇게 ‘장국영’을 떠나보냈다. ‘장국영’뿐만 아니라 ‘이승철’이나 ‘이승환’의 노래도 좋아했었는데 친구들이 다 가는 콘서트 장에 한번 도 가보지 못했었다. 나름 무늬만이라도 모범생 흉내를 내던 시절이라 부모님한테 콘서트 장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늦깎이 아이돌 팬이 된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그때 내가 ‘장국영’의 사진을 사고 ‘이승철’이나 ‘이승환’의 콘서트에 가서 목청 터져라 소리 질러봤다면 지금에 와서 늦깍이 아이돌 팬이 되었을까? 아마도 이 나이에 걸 맞는 다른 일들에 관심을 쏟고 있을 것이다. 살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열아홉엔 열아홉의 인생을 살아야 하고 스물아홉엔 스물아홉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경험하고 느껴봐야만 온전히 나이를 먹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 철들었다고 칭찬받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애잔하다. 저렇게 철들기까지 놓쳐버린 생애의 이면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혹시 십대 아이들을 둔 부모님 중에 아이들이 아이돌 팬이라 걱정 하는 분이 있다면, 걱정 뚝 끊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 때 안하면 저처럼 나이 마흔 다 되어서 다시 시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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