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중근이 첫 타자 이치로의 타석에 앞서 어필을 한 뒤 주심 데이나 드뮤스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끌고 있다. <연합>
경기시작전 신경전에 절묘한‘기 싸움’응수
두둑한 배짱·자신감으로 경기지배 승리견인
한국야구가 라이벌 일본을 누르고 이틀 전 콜드게임패의 수모를 만회하며 한국 야구의 자존심을 살린 데에는 선발투수 봉중근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메이저리거만 4명이 포진한 일본의 강타선을 시종 압도한 마운드에서의 그의 존재감은 눈부실 정도로 든든했고 특히 경기 시작직전 열광적인 도쿄돔 열기를 한 템포 식혀버린 절묘한 심리전은 그의 배짱을 보여준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봉중근은 이날 5만여 관중이 열광하는 가운데 일본의 톱타자 이치로 스즈키가 타석에 들어선 뒤 이리저리 타석을 고르며 시간을 끄는 것을 묵묵히 지켜봤다. 한참만에 이치로가 타석정리(?)를 끝내고 드디어 타격자세를 취하자 그는 와인드업 모션을 하다 갑자기 멈춘 뒤 주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치로가 타격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관중석에서 일제히 수백발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것이 투구에 방해가 된다며 어필을 한 것. 하지만 실제론 어필의 의미보다는 뜨겁게 달아오른 일본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는 것과 상대투수를 압박하려는 이치로의 심리전을 거꾸로 뒤엎는 ‘기 싸움’을 하는 것이 진짜 그의 의중이었다. 신일고 2학년 재학중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 17세때인 1997년 미국에 와 2006년까지 10년여동안 미국생활을 했던 봉중근은 메이저리그 주심인 데이나 드뮤스와 웃는 얼굴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동안 시간을 끌었고 봉중근을 기다리게 했던 이치로는 거꾸로 타석에서 하릴없이 봉중근을 기다려야 하는 따분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경기시작 때마다 있었던 이치로의 잘 보이지 않는 심리전에 이처럼 멋진 응수를 한 것은 봉중근이 처음이었다.
결국 이치로는 경기가 재개된 뒤 3구만에 평범한 2루땅볼로 물러났고 봉중근은 시작부터 기선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봉중근은 빼어난 제구력을 앞세운 절묘한 코너워크와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는 체인지 오브 페이스로 시종 상대를 압도하는 마운드 존재감을 보였고 이틀전 김광현을 상대로 첫 두 이닝에 8점을 몰아쳤던 일본의 타선은 이날 물먹은 솜처럼 무기력했다. 김광현이 일본에 초반에 난타당하는 것을 보며 너무 승부를 서두르는 감을 느꼈다는 그는 이날 초반부터 기 싸움에서 상대를 압도한 자신감과 함께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경기를 지배해 빅리거의 관록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한국을 승리로 이끈 일등공신이 됐다.
<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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