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3년 여름, 네덜란드 사람 ‘헨드릭 하멜’ 일행이 ‘스페르웨르’호라는 상선을 타고 일본으로 향하다 태풍으로 난파돼 제주도에 상륙한다. 관원들에게 잡혀 14년간 조선에 억류됐던 하멜은 당시 억류 과정과 조선의 문물과 생활, 풍속 등을 기록한 ‘하멜표류기’를 저술, 조선을 서방세계에 최초로 알린 사람으로 역사에 남았다.
이로부터 200여년 뒤인 1849년, 프랑스의 고래잡이배인 ‘리앙쿠르’호가 동해를 지나가다가 큰 바위섬에거의 충돌해 난파할 뻔했다. 독도였다. 졸지에 물귀신이 될까봐 가슴을 쓸어 내렸던 선원들 은 이 바위섬에 자기네 배 이름을 붙여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으로 불렀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하멜과는 달리, 생소하기만 한 이 ‘리앙쿠르’라는 명칭이 요즘 반갑지 않은 화제어가 됐다. 대한민국의 신성한 주권이 행사되고 있는 ‘독도’를 지칭하는 공식 지명으로 미국의 정부기관들이 모두 이것을 쓰고 있는 게 알려지면서다.
한국의 ‘독도’나 일본측이 주장하는 ‘다케시마’가 아닌 소위 ‘중립적’인 명칭이라는 이유라지만 사실 그 구체적 유례가 모호하다. 리앙쿠르호 선원들이 독도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해서 그 이름을 사용한다면, 그렇다면 제주도는 ‘하멜섬’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아니 배 이름을 붙였으니 ‘스페르웨르’섬이 되어야 한다는 건가.
결국 ‘리앙쿠르 암’은 일본측이 독도를 국제분쟁지역화 하기 위해 ‘중립’이라는 탈을 씌워 퍼트리기 시작했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번 독도 사태에 대해 독도 지명 오기 대처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는 등 뒤늦은 부산을 떨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정부의 대응은 일본만큼 치밀하고 전략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대한민국의 경비대가 주둔하는 등 이미 독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친 감정적인 대응은 결국 일본의 전략에 휘말리는 꼴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감정적이든 이성적이든, 그 대응이 ‘철저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려면 왜 우리가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부부터 제대로 해야 할 것 같다. 최소한 정광태의 노래 ‘독도는 우리땅’의 가사라도 다시 한 번 제대로 음미해볼 일이다. “지증왕 십삼년 섬나라 우산국, 세종실록 지리지 오십쪽 셋째줄… 러일전쟁 직후에 임자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김종하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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