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우수정(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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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년 전 까지만 해도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이 30 중반이 넘어서야 겨우 자전거를 배운 셈이다. 그 전까지 자전거는 내게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타고 싶어도 탈 수 없는 이름이여, 그건 바로 자전거였다.
대 여섯 살쯤 자전거와 관련된 사고를 당한 후, 두 바퀴 달린 물건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전에는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중, 고등학교 시절 몇 번 시도를 해보긴 했지만 번번히 실패한 후로는 아예 자전거에 대한 기대를 접고 말았다. 하지만 기대를 접는다고 미련마저 접는 것은 아닌지라,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줄지어 싸이클을 타고 달리는 무리의 사람들이나, 아이를 뒤에 태우고 유유자적 달리는 젊은 엄마들을 볼 때면 자연히 내 눈길은 그들을 따라 가곤 했다. 그런 내가 6년 전에 드디어 자전거를 타게 된 것이다. 폼나게 자전거를 타고 쌩~ 한번 달려 보고픈 소박한 꿈이 있기도 했거니와, 어릴 때 배우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 배운다는 건 거의 불가능이라는 세간의 믿음에, 어디 한번, 하는 오기가 발동한 덕분이다.
새로 이사한 동네에 버려진 것 같은 넓은 공터가 있었다. 버려진 것 같았기에 망정이지 버젓한 공원이었다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 아마 그토록 처절하게 연습하진 못했을 거다. 수없이 넘어지고 엎어지고 자빠지기를 반복하며, 어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라는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덤벼댔던지 마침내 자전거를 타게 되었을 즈음하여 내 종아리며 허벅지는 온통 푸르죽죽, 불그죽죽, 누르티티한 멍으로 고색창연하기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해 여름 내내 치마나 반바지를 입지 못하고 여름을 났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는 감격 하나만으로도 무더위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배우고 나서 자전거를 실고 롱비치까지 가설랑 길고 긴 전용 도로 위를 달릴 때의 그 삼삼함이라니… 달랑 두 바퀴 위에서 균형을 잡아 달리고 있는 내 자신이 어찌나 신퉁방퉁하던지, 그 감격이란 천지가 개벽하는 그것과 맞먹었다면 과장일테지만, 어찌됐건 내겐 신천지의 도래가 따로 없었다. 고작 자전거 하나 배워 놓고서 신천지 운운하며 오버하는 감이 있지만서도, 그만큼 구르는 두 바퀴 위에서 지딱지딱 균형을 잡는다는 건 운동신경이 둔한 나로선 애당초 불가능이었던 것이다. 그 후 초보운전의 어눌함으로 들입다 힘만 들어가던 몸도 비로소 살랑살랑 균형을 잡아 즐길 줄 알게 되면서, 바람도 방향도 속도도 어지간히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어지간히 자전거를 탄다고 하면서도 내 균형감각은 아직도 가끔 아슬아슬하다는 것이다. 늦배워 그런 것인지, 달랑 두 바퀴 위의 내가 자꾸 의식이 되고 그게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오늘도 그렇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바퀴 도는데, 좁은 도로에다 앞에 사람마저 다가오니 또 다시 휘청거리며 수습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걷는데, 누군가 ‘진정한 겸손은 자신을 잊는 것’이라고 했던 말이 뜬금없이 생각난다. 그런가? 넘어지지 않으려면 자신을 잊어야 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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