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에게 항상 어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나는 6남매의 막내였기에 우리 엄마는 다른 친구들의 엄마보다도 연세도 훨씬 많으셨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엄마와 살갑게 지내지 못했기에 나에게 엄마는 두렵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맨 위 언니는 나와 무려 15세 차이가 나고 그 중간에 2~3년 터울로 4명의 오빠가 있다. 막내오빠와 나는 두 살 차이로 우린 무척 친하게 지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려운 시기였기에 그때는 누구나 옷이 다 낡아 떨어질 때까지 형제간에 물려 입는 것이 상례였고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바로 위의 언니가 15세 차이가 나니 언니의 옷을 물려 입을 수가 없었고 결국 난 오빠들의 옷을 얻어 입고 다니는 처지가 되었다.
언니가 있는 아이들은 예쁜 치마도 입고 공주 드레스도 입는데 나에겐 항상 남자아이의 바지와 러닝셔츠가 고작이었다. 그렇게 오빠들로부터 물려 입은 옷으로 똑같이 입고 막내오빠의 등에 업혀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노는데 정신을 팔다 보면 저녁이 내려앉을 즈음에는 얼굴이며 몸이며 옷까지 모두 더러워져 눈망울만 반짝이는 거지꼴이 되는 것이 일수였다. 그래서 우린 동네 어른들에게 쌍둥이 거지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엄마는 어린 나에게 옷이 뭐 그리 대수냐 생각하셨는지 유치원을 들어가서도 오빠들이 입고 다니던 당고바지에 남자 조끼를 입고 다녀야 했고 초등학교 1년이 되어서도 난 여지없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옷으로 몸을 가리고 다녀야 했다.
그래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언니를 가진 아이들을 부러워했고 예쁜 옷을 입고 싶다는 소망이 언제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날 난 무서운 엄마 옆에 가서 쭈볏댔다. 눈빛만 보아도 심장을 뚫어보는 것 같으신 엄마가 갑자기 다정히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속삭여 주셨다. 옷을 사달라고 했다가 야단을 맞을 비장한 각오로 서있던 난 생각치도 못했던 다정함에 눈물이 먼저 흐르고 목이 메여 얼마동안 말을 하지 못하다가 개미소리만 하게 “난 여자 옷이 입고 싶어요”라고 아우성을 쳤다.
엄마는 소탕하게 웃으시더니 무척 미안해 하셨다. 한 번도 투정을 하지 않으니 옷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줄 아시고 그냥 두셨던 것이다. 그날로 난 여자 옷을 사 입게 되었고 그 이후 한 번도 오빠의 옷을 물려 입지 않고 내 옷을 입고 사는 럭서리함을 만끽하고 살 수 있었다. 나의 자기주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자기주장 능력이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표현하여 전달하는 능력을 말한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 중에 하나이다. 이 능력은 학교에서 수업 중에 시간을 내어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학업을 마치고 졸업을 하고 나면 자연적으로 생기는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기주장 능력은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하는 기술이다. 우선 이 능력은 선택하는 기회를 많이 부여하고 또래와 적절하게 대화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서 시작된다. 특히 장애를 가진 학생에게는 반복적으로 선택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고 올바른 선택을 한 후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갖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은 지식의 양보다도 자기주장을 하는 능력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