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마이어가 한국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승관 기자>
크리스티 첫 경매 로버트 마이어
한인 부인과 사별했지만
며느리들까지 한인‘이채’
1986년 크리스티에 한국 도자기를 처음으로 경매에 부쳐 한국 전통 문화재의 세계화에 불을 붙인 1등 공신인 로버트 마이어(76).
한국 전통 문화재 450여점의 소장품을 대부분 처분한 그이지만 7일 두 마리의 한국산 양 묘지기가 지키고 있는 자택에서 만난 그는 샌타바바라에서 어렵게 구한 18세기 한국 자개갑을 손질하며 식지 않는 한국 전통 문화재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미국에서 채 다섯 명이 안 되는 한국 전통문화재 수집가 중 ‘마이스터’로 꼽히는 마이어씨는 “한국전쟁 무렵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던 한국 전통 문화재가 이제는 내가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집가들 사이에서 가치가 올라갔다”며 1952년 주한미군으로 한국 땅을 밟으며 아마추어 수집가로 헐값에 물건을 사들였던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아무도 한국 전통 문화재에 대한 가치를 몰라보던 시절 크리스티에 한국 전통 문화재가 첫 선을 보이게 된 데 대해 그는 “사실 크리스티에 소장품을 내놓을 생각이 없었는데 당시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게 돼 갑작스럽게 내놓게 됐다”고 뒷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마이어씨에게 경매 참여를 권유한 이는 당시 크리스티 일본담당부서에 근무하던 그의 친구의 아이디어였다.
한국전쟁 종전무렵 파병군인으로 한국을 밟은 후 한국과 인연을 쌓은 그는 귀국 후 스튜어디스 출신의 한인 부인과 결혼하고 세 아들 중 두 명이 한인 여성과 결혼할 정도로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중국과 일본 문화재 대신 한국 문화재에 매혹된 데 대해 “한국 문화재는 조금 못 생기고 상태가 안 좋아도 궁궐에서 관람용으로 쓰이던 것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쓰이던 사람의 숨결이 담겨져 있어서 매력적”이라며 예찬론을 폈다.
그는 40여년 한국 문화재를 모으며 갖가지 사기꾼과 주변의 무지에 ‘껄껄’ 웃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가짜 신라금관을 진짜라고 우기며 팔겠다고 덤비던 한국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들어온 물건들은 도굴된 것도 약간 있겠지만 한국이 못 살던 시절 마구잡이로 팔려 반입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 전통 문화재로 많은 돈을 벌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도 LACMA에만 250여점을 넘기게 된 배경에는 일종의 책임감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부인 메리 류씨를 세상에서 떠나보내며 소장하고 있던 마지막 한국 전통 문화재 150여점도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으며 아쉬움 섞인 작별을 고한 바 있다.
<이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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