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웨스트 코비나 성크리스토퍼 성당에 마련된 노숙자 숙소에서 패트리샤 수 테일러씨가 침대에 걸터 앉아 있다.
6살때 입양→대학생→구치소→지금은 노숙자
“친엄마 보고파요”
백인 가정에서 20여년 살며 정신적 상처
폭행·마약 복용 등 한때 삐뚤어진 생활
“내 이름은 이수향… 한국 가고 싶어요”
13일 웨스트 코비나 성크리스토퍼 성당의 노숙자 캠프 한 켠에서 낯선 동양인 여성이 연신 담배를 비워댄다. 백인과 히스패닉 틈바구니에서 유일한 동양인 얼굴을 한 그의 이름은 파트리샤 수 테일러(27). 5개월째 거리를 떠도는 그는“내 이름은 이수향”이라며“나도 한 때는 한국어를 할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입양의 역경을 이겨낸 승자의 스토리가 쏟아지는 2006년 겨울. 대학생으로, 한 때는 해병대 군인으로 살았던 파트리샤의 겨울나기는 가혹하기만 했다.
서울 태생인 파트리샤는 2살때 입양기관으로 보내진 후 6살때 교사인 백인 가정의 집으로 입양됐다. 그곳에서 그는 또다른 한인 입양인과 오누이란 이름으로 20여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양부모의 정성에도 삐뚤어진 삶을 살게된 데 대해 파트리샤는“어렸을 때 겪었던 정신적 상처가 너무 컸던 모양”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영어 부족으로 양부모와 대화를 할 수 없었던 어려움, 입양기관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그는 연달아 쏟아냈다.
끝나지 않는 시련은 그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2000년 원치 않는 임신과 선천성 기형아 출산, 양부모의 손가락질 등등. 세 명의 아이를 출산한 그에게 남겨진 자식은 없다. 파트리샤는“양부모가‘정신적으로 불안하다’고 사회복지국에 신고해 1주일에 한 차례만 자식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3살 막내는 입양기관에 보내줘 그가 그토록 싫어하던 입양아란 꼬리표를 대물림받았다.
폭행죄와 마약복용죄로 구치소를 들락거리기도 했던 그에게 사회의 벽은 높기만 했다. 그는“취직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시큐리티 문제 때문에 취직이 쉽지 않다”며“이제는 마약도 안 하는데...”라며 연신 담배를 빨아댔다. 그러나 그는 노숙자의 삶에 익숙해졌는지“이 생활도 나름대로 괜찮다”며 스스로를 자위했다.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영문학을 칼리지에서 전공하기도 했던 파트리샤. 주간 시간 서점을 즐겨 찾는다는 그는“내 삶을 다룬 글을 쓰고 싶다”며 거리에서도 놓지 않는 한 가닥 꿈을 잃고 싶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노숙자로 살고 있는 신세지만 그는 한국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의 친모가 지난 2000년 대한사회복지회를 통해 딸을 찾아나서며 서신으로나마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기 때문이다.‘생모(Biological)’란 말을 입에 담지 않는 그는“한국말은 못 하지만 뿌리를 찾고 싶다”며“어쩌면 지금 내가 의지할 수 유일한 사람은 엄마뿐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파트리샤와 생모를 연결해 준 대한사회복지회의 사회복지사는“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줄 몰랐다”며 현지에서 후원자를 찾고 있다는 그녀의 상황에 대해“아마 한국의 엄마가 걱정할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다”며 입양의 원망보다 큰 부모 사랑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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