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캘리포니아 라호야의 솔크 생물학 연구소에서 흥미로운 모임이 있었다.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운집했다. 통상 온화하고 차분하게 진행되던 학자들의 포럼이 이번엔 전당대회장을 방불케 했다. 논리로 무장하긴 했지만 격앙된 어조가 난무하다시피 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스티븐 와인버그는 연단에 올라 “세상이 이젠 신앙의 오랜 악몽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해롤드 크로토는 “기독교 연구지원 단체인 존 템플턴 재단이 앞으로는 150만달러의 상금을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에게 수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도킨스는 ‘신에 대한 환상’(God Delusion)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명해진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진화 생물학자이다.
캘리포니아 라호야 솔크 생물학 연구소 포럼
노벨상 수상자 포함 저명 과학자들 대거 참석
기형아 사진 제시하며“신 아닌 자연의 지배”
“기도의 치유효과 연구는 쓰레기 시도”매도
“신앙의 악몽에서 벗어나야” 원색적 표현도
학술포럼이 이념으로 무장한 전당대회장 방불
부시 행정부의 우주탐험 자문가이며 뉴욕 시 헤이든 천문관의 디렉터인 네일 타이슨이 마이크를 잡으면서 분위기는 한층 고조됐다. 타이슨은 기형적인 모습으로 태어난 신생아 사진을 제시하면서“이는 신이 아니라 자연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가슴을 짓누르는 어린 아기의 뒤틀린 모습에서 어떻게 신의 사랑을 떠올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콜로라도 주 보울더의 우주과학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캐롤린 포르코는 농담을 약간 섞어“타이슨 박사를 새로운 교회의 초대 목사로 선임하자”고 했다. 종교에 반기를 정면으로 든 타이슨의 용기와 그의 과학적 발견을 높이 평가해서 한 말이다.
포르코 박사는 말을 이었다.“성경이나 신이 창조했다는 어떠한 설명보다 우주는 그 자체로 믿을 수 없을 만큼 풍요롭게 아름답다. 장엄하고 경이로운 우주를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이번 모임은 캘리포니아의 교육기구인 과학네트웍이 후원하고 샌디에고의 투자자인 로버트 젭스가 돈을 댔다. 주제는‘신앙을 넘어서: 과학, 종교, 이성과 생존’이다. 종교의 울타리를 과감히 넘어 이성과 지성의 나래를 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스탠포드대학의 생물학자 조앤 러프가든은 성경의 비유를 들어 크리스천 학자들을 살짝 건드렸다.“변형은 유전자의 겨자씨”라며 진화론을 받아들일 것을 우회적으로 건넸다. 무신론자인 도킨스는 이보다 한 술 더 떴다.“종교교육은 세뇌이며 아동학대”라며 원색적인 표현사용을 서슴지 않았다.
크리스천 연구후원에 큰 역할을 하는 템플턴 재단이 맹공을 당한 셈이다. 이에 질세라 템플턴 재단의 수석부회장 찰스 하퍼 주니어가 반격에 나섰다. “도킨스의 책은 값싼 철학으로 돈을 벌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과학이 모든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는 오만함을 드러냈다”고 비난했다.
이에 다시 역공이 가해졌다. 컬럼비아 의대 리처드 슬로운 박사는 저서 ‘맹목적인 믿음’에서 기도의 치유효과에 대한 연구를 템플턴 재단이 지원한 것은 ‘쓰레기 시도’에 불과하다고 힐난했다. 이번 모임에서는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가 크리스천보다 수적으로 압도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종교의 틀에 갇히지 말고 과감히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결과를 발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잇달았다.
신경과학 박사과정에 있는 샘 해리슨은 “과학은 수학적인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지적인 정직”이라는 멋들어진 표현을 했다. 그는 “모든 종교가 이 세상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한다. 그러나 이는 그저 주장일 뿐이다. 현실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타이슨 박사는 역사를 예로 들었다. 아주 오래 전 바그다드가 세계문명의 중심이었을 때 밤하늘의 별 가운데 3분의 2가 아랍어로 이름 지어졌다. ‘algebra’나 ‘algorithm’도 모두 아랍어이다. 그러나 서기 1100년께 암흑시대가 왔다. 조사와 연구가 신의 계시로 대체됐다. 지적 기반이 붕괴했다.
지금은 무신론의 공산당이 집권하는 중국이 과학발전의 좋은 토양이라는 역설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후세에 별들 이름이 모두 중국어로 지어질지, 아니면 종교가 세상을 뒤덮어 어느 별도 이름을 갖고 있지 않을지 모른다는 추론이다. 종교가 과학적 탐구를 속박할 경우를 가상한 가설이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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