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90세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온몸의 맥이 풀리고 서러워 울다 자다 하다보니 동창들에게 연락도 하지 못했다. 평생 어머니에 대해 가졌던 복잡한 감정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고 내 잘못을 전부 용서해 주셨는데 나는 모자라서 그것을 몰랐다. 그러다가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뒤늦은 깨달음에 눈물이 한없이 흐른다.
어릴적 나는 큰 별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내 모습은 반딧불보다 희미하다. 내가 제대로 못해서 그런 것일 터인데 나는 그것을 어머니 탓으로만 돌렸다. 어머니가 한석봉 어머니처럼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아서 그렇다고 불평하며 어머니를 섭섭하게 해드렸다.
얼마전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다. 학창시절 등록금을 제때 주지 못하니까 내가 죽어버리겠다며 쓰레기 통속에 들어가 있던 일을 떠올리면서 “모든 것이 어미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나는 이미 늦었다며 말을 잘라버렸다.
이후부터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더니 급기야는 돌아가실 때까지 입을 열지 않으셨다.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어머님과 정리할 게 많이 있었다. 어머님께 빚이 많아서 탕감 받고 용서받고 싶었다. 하지만 의식이 없으시니 복도에서 서성거리다가 되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소호흡기를 착용하신 어머니가 깨여나길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용서를 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뺨에 눈물을 적시며 뺨을 맞추었다. 어머님께 사죄하고 용서를 청한 것이었다.
내가 회개를 하자마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날 저녁에 편히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는 내가 회개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끝까지 기다리신 것 같았다.
사랑이 있는 곳에 용서가 있고 용서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음을 느꼈다. 어머님께 용서를 받고 나니 힘이 절로 난다. 용서를 청하지도 않고 용서를 하지도 못하고 살아온 것이 내 인생의 걸림돌이었음을 이제 깨닫는다.
어머니는 영 떠나신 게 아니라 영원히 내 마음에 살아 계시며 내가 성공의 길로 나가도록 이끌어주실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은 바다보다 넓다는 사실을 느꼈다. 어머니는 떠나심으로 나를 새로운 인간으로 놓으셨다. 이제부터 인생을 다시 설계해야겠다. 어머님의 뜻을 너무 늦게 알았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박진원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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