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열기가 있긴 하지만 한껏 자란 큰 나뭇가지와 잎들이 층층이 설켜 하늘이 사이사이로 보이는 정오는 참 한가롭다. 집 옆 그리피스 공원에 골프장이 넷이 있는데 그중 가장 만만하고 값이 싼 파 트리 로스펠리즈 골프장이 있다.
시니어 나이에서 약간 모자라도 눈감아주며 2달러50센트를 내고 칠 수 있는 인심 좋은 곳이다. 골프를 친다기 보다는 마음이 힘들고 허전할 때 혼자 가면 딱 좋은 곳이다. 동네 놀이터마냥 노인들이 와서 세월아 네월아 하는가 하면 주말이면 꼬마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골프채를 한껏 휘두르는 모습이 아름다운 정경으로 와 닿는다.
운이 좋을 때는 혼자서 두세 홀을 가도 아무도 따라오지 않지만 노인 팀이 앞에 있으면 가는 홀마다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 처음엔 짜증스러웠고 시간이 아까웠지만 오늘처럼 시간이 좀 있고 날씨조차 받쳐주면 한 홀 한 홀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시간조차 어찌 그리 좋은지! 평소에 눈길이 가지 않던 길섶에 핀 조그만 들꽃이랑 바람이 볼 때마다 흔들대는 나뭇잎들 속에 비행기 타고 날아온 세월을 헤아려 본다.
노스웨스트 비행기는 나를 월부로 미국 땅에 데려다 주었고 간호사 자격증을 담보로 공항에 내리는 날 영주권을 손에 쥐어준 미국이다. 젊음이 좋았는지 겁도 없이 무일푼으로 이민역사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30 여년이 흘러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간관계의 깨어짐이었다. 마음의 고통을 다스리기 위해 사흘을 주야로 전깃불 켜놓고 몸부림치기도 했으며, 상담소의 문을 두드려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기 문제는 자기가 다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됐고 또한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세월 속에 아픔이나 고통도 빛바래져 감을 느끼게된다.
추억의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 어느덧 홀이 비어있다. 홀인원을 기대하며 힘차게 샷을 날려본다. 굿 샷! 뒤에서 할머니들의 응원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윤춘자/글렌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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