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찾아 나서는 일은 복잡한 일상에서의 탈출이다. 어릴 때 소풍가기 전날 밤 잠을 설치던 그런 설렘이 아직도 남아 있다. 벌써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고 거므스레 물이 오른 나무들은 새잎들을 한 치씩이나 내밀었을 테니 나의 게으름을 탓해야 할까 보다.
이른 봄에는 하얀 꽃잎을 펼친 란(蘭)을 만날 행운을 기대하면서 집 근처 식물원 구석의 온실부터 뒤적인다. 그리고 조금 지나 과일 나무에 꽃눈들이 움트기 시작하면 여장을 꾸려 주말의 짧은 출사 여행을 떠난다. 대개는 그림을 그리는 아내가 동행해 준다.
북가주 농장의 과일 나무들이 줄을 맞춰서 화사한 꽃 잔치를 펼쳐 놓을 즈음이면 나파 벨리의 묵은 포도나무에도 털이 보송보송한 새잎들이 돋아나고 포도주 시음장 입구에 있는 등나무에 연보라색 꽃 들이 뻗어 올라간 줄기마다 주렁주렁 달린다. 조금 외각으로 벗어나면 흰색 노란색 파란색의 들꽃들이 봄바람에 한들거리며 우리를 반겨 준다.
더위가 시작되면 해변을 서성거린다. 라호야 해변에 줄지어 일광욕을 즐기는 물개들과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찍는다. 베니스 비치의 인파 속에서 아리따운 처녀들의 비키니 차림 몸매도 훔쳐보고 퍼시픽 하이웨이를 따라 북상하면서 등대 주변의 절벽을 오르내리며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도 렌즈에 담아 본다.
찬바람이 살랑 이는 가을에는 꽃보다 더 고운 단풍을 찾아 나선다. 비숍을 지나 마운틴 위트니 안쪽 샤브리나 호수의 노란 단풍도 찍고 어니언 밸리를 돌아 내려오면서 검붉은 단풍을 파인더에 가득 싣고 돌아 내려 오너라면 아직 가 보지는 못했지만 알프스의 절경이 이보다 더 나으랴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6,000피트 이상 되는 산정에 눈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또다시 마음이 싱숭생숭 해지고 끝내 참아내지 못하고 길을 떠난다. 팜스프링스 서쪽에 있는 샌하신토 산정 호수가에 차를 세우고 맑은 물속에 거꾸로 비친 설경을 찍다보면 이곳이 그 옛날 첫 사랑을 만났던 강원도 산골의 작은 호수가로 착각을 일으키고 만다.
캘리포니아의 우기인 늦은 겨울과 봄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소재로 바빠진다. 다름 아닌 안개와 구름이다. 아주사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올라서서 저 밑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안개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사이를 휘감아 오르는 운무는 마치 인 적이 끈긴 태고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조금 지체하면 물안개는 어느새 산마루를 타고 넘어 하늘에 닿고 안개 속에 풀어진 붉은 색 노을은 황홀하기만 하다.
게티 뮤지엄의 붉은 색감이 도는 대리석 건물들, 데스밸리의 모래언덕, 조수아 트리 공원의 선인장, 바위에 걸린 반달, 밤에 찍은 101번 프리웨이 - 내게로 다가오는 밝은 빛은 천국행이고 반대쪽으로 흘러가는 붉은 빛은 지옥을 향해 질주하는 것 같은 차량 행렬 - 데이나 포인트 항구에 정박한 고색창연한 범선, 포인트 리에 등대, 러시안 리버 위를 가로지르는 녹슨 철교, 꽃, 단풍, 열매, 잔설이 분분한 떡갈나무 숲, 패션 아일랜드의 연말 장식들 등등.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들을 장소별 종류별로 구분해 놓고 슬라이드 쇼를 돌려보면 마치 묵은 사진첩을 들춰보는 것처럼 그때 그 장소로 다시 돌아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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