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나라… 그 미국이 요즘 개스비 인상으로 안절부절이다. 처음 이민왔던 1980년도 당시 갤론당 1.69달러였던 개스비는 근 20년이 넘도록 소강세를 유지하다가 이제는 3달라시대를 넘어 머지않아 갤론당 5달러시대가 닥칠 것이라고들 불안에 떨고 있다. 요즘은 출근 때 마다 후리웨이가 한산해진 느낌이다. 차들도 소형차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고, 후리웨이가 전하는 아메리카 행진곡이 어쩐지 예전같지 못하다. 20년전만해도 후리웨이의 분위기는 지금과는 달랐다. 캐딜락을 위시하여 대형차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고 일제차들은 차축에 들지도 못했다. 특히 혼다등은 거의 모터사이클 취급을 당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미국차들이 보기 힘들 지경이다.
우리들이 미국와서 처음 구입한 차는 당시 호스파워 285를 자랑하던, 미국 부(富)의 상징이었다. 70년도형 뷰익 스카일락(Buick Skylark)이었는데 개스 연소량때문에 미국정부는 같은 기종을 1973년 품절시켰고, 80년도부터는 아예 일제 모형처럼 변모해 버리고 말았지만, 스카일락이 후리웨이를 누비던 당시만해도 미국사회는 넉넉했다. 단돈 20불이면 시장바구니가 가득하게 장을 볼 수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도 밝고 친절했다. 당시 어느 미국인은 차흥정에 2시간 이상 진을 빼고도 ‘안 사도 땡큐’라고 했다. 우리차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순진한 건지 어수룩한 건지… 그런 만만했던 미국이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요즘은 그런 순진한 아메리칸은 보이지 않는다. 프리웨이가 온통 일제차 물결이요, 건장한 코쟁이들도 외소한 일제차 속에 숨어들어 당당한 모습은 눈씻고 찾아볼래야 없다. 예전에 보여주었던 도량은 커녕, 동양인보다 더 째지고 못마땅한 눈초리로 이민자들에게 색안경을 들이대고 아, 옛날이여… 과거의 신음소리만 내고 있으니 말이다.
징지스칸이 그 드넓은 중국대륙을 정복하고 유럽일부까지 영토를 넓힐 수 있었던 것은 기동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즉 말(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미국도 따지고 보면 차 때문에 발전된 나라였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활한 아메리카 신천지를 그처럼 빠른 시일내에 개척해 낼 수 있었던 데는 자동차의 발명이 한 몫하지 않았나싶다. 그러기에 미국은 자동차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나라이다. 이것은 단순히 차를 소유하여 부를 뽐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그저 차가 없으면 살 수 없을 뿐이다. 드넓은 대륙이야말로 마치 차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미국은 차와는 어쩐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므로 미국에서는 누구나 아메리카의 첫 행진곡은 차를 고르는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 가족도 미국땅을 밟고난뒤 가장 큰 고민중의 하나가 차를 고르는 문제였다. 미국 온지 6 달째. 당시 변변한 잡(직업)이 없었던 터라 저럼한 가격에 성능좋은 차를 구하고 있었지만 걸릴 턱이 없었다. 겉이 그럴듯하면 차체가 너무 크고, 연소량이 많았다. 연소량이 경제적이고 제법 겉모양이 삼삼하면 값이 비쌌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광고를 보고 단돈 천 오백불에 구입한 것이 바로 스카일락이었다. 3만5천마일 밖에 뛰지 않았는 데 천오백불이라니… 우리는 눈을 의심하면서 차주인에게 달려갔다. 당시 새차 가격이 만불이었으니 3만5천마일 뛴 차는 아무리 오래된 차라해도 최소 3천불이상은 주어야 구입할 수 있었다. 차색은 금색이었고 날렵하게 생긴 모습은 중고차로서 손색이 없었다. 비록 차산 당일날 막내 동생이 유혹을 참지 못해 혼자서 몰래 몰고나가다 차사고를 당해 왼쪽 문짝이 참혹하게 일그러진 똥차로 변하고 말았으나 25년이 넘도록 그처럼 승차감 좋고 잘 나가는 차는 그후로 타보지 못했다.
바닥을 드러낸 지구의 오일 매장량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스카일락 처럼 개스를 겁없이 뿌리며 후리웨이를 달리던 정경은 볼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천만년 의구할 것 같았던 미국도 세월의 부침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리들의 첫 차 스카일락도 개스를 무진장 먹어치우던 거대한 공룡으로서, 언젠가는 박물관에 전시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공룡을 부리며 신나게 거리를 누볐다는 사실이 하나의 전설로 남게될지 누가 알겠는가. 영광스러운 과거는 흘러갔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미국이 옛날에는 그래도 차 하나에도 여유와 운치가 있었다는 점이다. 인간적이었다고나 할까. 요즘 차는 지나치게 기계적(디지털)이고 복잡하다. 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편리 추구 일변도 속에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은 아닐까. 유선형의 그 멋들어진 차선은 현대 차의 미학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선이 과감하고 간결했다. 일종의 대륙적인 기질(?) 이라고나할까 적당한 여유로움속에 깃든 인간적인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고급만을 추구하던 시대의, 어떤 사치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스카일락은 고급차도 아니었고 사치품목에 들만큼 대형 차도 아니었다. 미국인들이라면 누구나 탈 수 있었던 사회 중산층을 위한 차였다. 적당히 컸고, 적당히 사치스러웠다. 아니 요즘 차에 비한다면 너무도 간결했고 인간적이었다. 후리웨이를 여유있게 미끌어지던 그 날렵한 승차감의 여유 속에서 어쩌면 미국만의 낭만, 풍요로움의 마지막 가는 어떤 안타까움같은 것이 남아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꿈에라도, 당시의 스카일락과 같은 차종이 만들어져 그 차를 몰고 종착역을 향해 치닫는 우리들의 인생 프리웨이를 마음껏 달려볼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을는지 모른다. 아메리카에서의 당신의 첫 차는 어떤 것이었는지요. -어쩐지 스잔한 추억으로 가슴이 저려오지는 않습니까-
-음악 얘기를 조금 벗어나 생활의 단상을 한번 적어보았다 -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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