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국 가수들이 미국 공연하러 올 때마다 별 관심 없었다. 그런데 할리웃보울 음악축제를 불과 3일 남겨놓은 시점에서 그 날 따라 내 눈에 유난히 크게 들어오는 신문광고를 보는 순간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특히 아이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서 한국어를 좀더 열심히 배우도록 동기유발을 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음악축제에 가고 싶은지 의사를 타진해 보았더니 처음에는 반응이 별로였다. 아내와 나는 가수들의 이름과 히트곡들을 들먹이며 재미있을 거라고 부추겨 마침내 구경을 가기로 했다.
서둘러 표를 구하려고 보니 거의 매진이 되어 표 사기가 쉽지 않았는데 마침 예약이 취소된 좋은 자리가 나와 그 자리를 우리가 예약을 했다. 나 같은 소위 짠돌이 타입에겐 있을 수 없는 그런 자릴 확보하고선 평소의 아빠답지 않는 씀씀이가 아이들의 경제 교육에 혼돈을 가져오진 않을지 한편으로 걱정되었다.
이렇게 하여 거의 10년만에 다시 가게 된 할리웃보울! 즐거운 가족 나들이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싶어 토요일 아침에 가족 몰래 답사를 가 보았다. 주차 위치며, 공연장의 좌석에서 무대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렌즈를 사용해야 최상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테이블 커버는 어떤 게 좋을지?
그런데 경비원들이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허탈하게 집으러 오려다가 혹시나 싶어서 뒤쪽 출구로 가보니 거기엔 경비원이 없는 것이 아닌가.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들어가 공연 때 촬영할 카메라 렌즈도 결정하고 좌석 위치 등을 확인하였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식구들과 답사 결과를 이야기한 후 입장 시간에 맞춰 공연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카메라는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경비원의 말에 순간적으로 렌즈와 카메라를 분리해서 감추어 들어가고 싶은 유혹이 생겼지만 아이들에게 규칙을 위반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도살장에 끌려가듯 카메라 바디를 보관소에 맡겼다.
카메라 렌즈만 달랑 들고 공연장에 들어가는 심정이라니.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아이들과 아내가 아니었던가. 어렵게 마음을 다스리고 우리 자리에 앉아 사방을 보니 모두 벌써 먹고 마시고 있었고 아내도 뒤질세라 크리스탈 포도주 잔을 찾으면서 축제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었다.
장장 4시간 가까운 공연동안 지친 기색 없이 가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뒤에서 보면서 내 몫까지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큰 아이에 물어보았다. “어제 아빠가 투자한 자리 값이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느냐?”는 말에 망설임 없이 “Yes!”로 답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가끔은 이런 가족 이벤트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으로서의 임무라는 생각을 했다.
사무엘 권/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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