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뜨니 내 나이가 반평생을 훨씬 넘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숫자에 와있다. 허전함에 울고 싶다. 부모님과의 이별, 친구와의 이별… 모두 다 넘다보니 산마루 아래가 바로 보인다. 남은 길은 내리막길. 나를 두고 가버린 시간들이 야속하다.
돌이켜 꼭 간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 있나? 초조함만 꽉 차 있을 뿐 내 가슴에 다른 빈자리는 없다. 언젠가 누군가 말했다. 얼굴이 예쁜 게 아니라 나이가, 젊음이 예쁜 것이라고.
오래 전 김포공항에서 보았던 아주 멋진 여자를 기억한다. 바바리 코트에, 세미나 차 잠깐 머물다 가는 듯한, 조금은 피곤해 보이고, 자연스러운 머리스타일의 40~50대 여성의 모습이 흑백 사진처럼 뇌리에 남아있다.
그 때는 60년대였으니 내 나이가 정말 예쁠 때, 무엇이든 꼭 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파릇파릇 꿈 많을 때였다. 그 여성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의 여정은 앞으로 얼마나 남았나. 특별히 봄이라 이름할 기후도 아닌 캘리포니아지만 그래도 봄은 희망의 계절이다. 이 봄에 미래를, 남겨진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크리스티나 김
글렌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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