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 것은 없으면서 좋은 일만 바란다고
바위가 솟아오를까 기름이 가라앉을까
서둘지 말라는 듯 가까워질수록 길은 좁아지고 휘어진다. 속도욕심은 저절로 꼬리를 내린다. 삼보사-. 로빈슨캐년로드 초입에, 숲그림자를 들추며 얼마쯤 더 들어간 곳에, 세글자 한글간판이 차례로 길잡이 겸 보초를 선다. 73년1월 첫 법회 때 선보인 대웅전을 88년2월 원인 모를 불로 잃어버린 삼보사는 잡풀 무성한 그 터를 놔둔 채 조금은 시골외갓집 같은 풍으로 지난 7일(일) 오전11시쯤 처음 찾은 손님을 맞았다.
상큼한 바람에 처마끝 풍경들은 서로 부대끼며 맑은 소리를 냈다. 날면서도 쉬면서도 줄창 지저귀고 텃밭서리를 하다 난데없는 인기척에 힐끔 뒤돌아보며 도망치는 시늉만 하는 날짐승들, 쇠스랑 삽 곡괭이 등 농기구에다 칠판 자전거 의자 롤러스케이트 따위들이 섞여사는 헛간, 홀로 빈둥거리는 나무그네, 장독대와 우물, 손바닥만한 연못에 핀 연꽃을 지긋이 내려보는 돌부처, 큰북과 징을 그늘로 감싸주는 삼보각….
나 하고 만난지 5년이 됐으니까 지금 뭔 얘기를 할지 알 거여. 그런데 안할 수가 없다 이말이여. 절에는 왔다갔다 하면서 부처님 하고는 관계없이 다니면 뭐하냔 말이여.
천도제뒤 12시쯤, 스무명 남짓 불자들을 향해 돌아앉은 범휴 스님은 죽비를 타닥 쳐 입정을 끝내고 깐깐한 인상만큼 카랑카랑 목소리로 법문을 열었다. 절이든 교회든 폼으로 다니지 말고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라’는 골자였다. 3년 30년이 가도 정작 부처님 말씀에는 별 관심이 없는 걸 보면 3학년이 돼도 1 더하기 1 가르치는 기분이라며 그러면 이 스님은 어떻게 된다고요?라고 묻고는 돌아버린다니까 환장한다니까 스스로 답하며 너털 웃었다. 자신에게는 더없이 차갑되 중생구제 열정은 미칠 정도로 뜨겁다는 것이 아연 느껴졌다.
당대를 주름잡던 세갈래 수행흐름을 뚫고 피어난 부처님의 깨달음 원리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인과법(연기법)으로 풀이한 뒤 스님은 어떤 결과를 바라거든 그 결과가 나올 일을 해야 한다고 실천궁행을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는, 잘한 것은 없으면서 좋은 것만 바라는 욕심을 가리켜, 무턱대고 기도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빗대어, 부처님 언행을 기록한 아함경의 예화로 이렇게 질타했다.
가미니여, 깊은 못에 크고 무거운 바위를 던져놓고 사람들이 못 가에 모여서 ‘바위야 떠올라라’ 하고 축원을 한다고 그들 소원대로 떠오르겠느냐…기름병을 깨뜨려 못 물에 던져놓고 ‘기름아 가라앉아라’ 하고 빈다고 해서 가라앉겠느냐.
일요일낮 산방호통에 익숙해진 오래된 불자들도, 신참 불자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호통에 놀란 듯 화들짝 튀는 바람결에 나뭇잎들도 굽실굽실 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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