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어머니가 요즘 다리를 다쳐서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아내는 효도 잘하는 남편이 언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자고 할까 걱정이 태산이다. 남편은 아내의 눈치만 살핀다.
장녀인 아내의 처지에서 보면 지병을 앓고 있는 친정어머니가 무척 불쌍하다. 모시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어머니의 용돈을 다달이 드리려고 했던 결심도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머니 모시는 문제는 각자 일방통행이다. 그 문제만 아니면 가정이 편안하다. 결국, 서로 자기 어머니를 마음속으로만 끌어안고 살아간다.
한편, 자식 사랑이 극진한 어머니는 그런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건강하고 아무 걱정도 없다고 자식들 앞에서는 연기를 실감나게 한다. 내가 편안한 대로 하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닦아낸다. 애지중지 키웠던 자식들을 멀리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라보는 행복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양로원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훌쩍 먼 세상으로 떠나고 나면 손때 묻은 지갑에서 자식들의 사진이 나오고 유품에서 자식들이 준 생일 선물도 보인다. 자식들은 생각지도 않은 유산이라도 나오면 감동을 한다. 몇 줄이라도 자식들에게 주는 애틋한 편지가 있으면 통곡을 한다.
사실 부모들의 자식 밀어내기는 더 강한 끌어안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끌어안기는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리워도 가슴에 묻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닌가.
스무디가 처음 나왔을 때다. 손자 녀석이 “할머니, 맛있어 먹어”하고 내밀었다. 할머니는 “나는 그런 것 싫다. 너나 많이 먹어라”라고 했다. 그 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이다. 손자는 울먹거리며 할머니에게 가장 먹고 싶은 게 무어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네가 먹던 스무디”라고 말했다.
어려운 시절 우리 어머니들은 먹다 남은 굴비 대가리나 사과 속 꼬투리가 좋다면서 자식들이 잘 먹는 것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그렇게 살았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 줄을 자식들은 알기는 아는지.
해마다 어머니날이 오면 왠지 가슴이 저미어 온다.
고영주
국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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