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겨이불이 이제는 후덥지근하면서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쉬는 날인 오늘 이불빨래를 하기로 작정을 했다. 침대커버를 벗기고 양털이불 네 귀퉁이마다 커버와 겉돌지 말라고 몇 땀씩 꿰맸던 것을 뜯고 뒤집어서 지퍼를 잠근 다음 세탁기에 돌렸다.
커버를 벗겨낸 이불과 베갯속을 햇볕 잘 드는 뒷마당에 빨랫대를 펴고 2시간동안 바삭하게 말렸다. 세탁기가 돌고 햇볕이 이불속을 말리는 동안 차 한잔을 마시며 옛날 생각을 했다.
“그래! 나 어릴적 이맘때쯤이면 할머니께서 이불 호청 빨래를 하셨지”
양잿물 넣고 깨끗이 삶아 빨아서 널어놓은 하얀 호청들이 앞마당 빨랫줄에서 봄바람에 너울너울 흔들리던 광경, 그리고 다듬이 돌 위에 반듯이 접은 풀먹인 호청을 올려놓으시고 다듬이질 하시던 할머니 모습이 생각났다.
참 좋은 시절에 사는구나! 할머니께서 세탁기, 드라이어, 지퍼로 된 이불커버 - 이런 것들을 보셨으면 뭐라고 하셨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나를 유별나게 예뻐하셨던 할머니. 나 역시 할머니 손에서 자라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좋아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참 희한한 일이 있었다. 9년전 미국으로 오려고 준비를 다 끝내고 출발 이틀 전 할머니 묘소에 다녀와야지 하며 잠이 들었었는데 그 밤에 꿈을 꾸었다. 할머니께서 곱게 차려입으시고 나를 서운하다는 듯 쳐다보시며 “노란 국화나 사주고 가렴”하셨다. 다음날 노란 국화를 사서 묘소에 놓고 미국으로 왔다. 그리고 보니 그 이후로 꿈에서도 할머니를 뵌 적이 없었다.
오늘 새로 내놓은 봄 이불 덮고 잘 때 꿈에서라도 할머니를 한번 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은형 애리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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