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왼쪽 눈으로만 보면 가운데가 보이지 않는 증세가 생겼다. 병원 3곳에서 같은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생각해 보았지만 수술비 부담과 더욱이 완치의 보장도 없는 것 같아 접고 말았다. 나이가 들면서 모든 부분이 나빠져 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인데 그 속도나 줄여가면서 살자는 수준에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5년마다 운전면허증이 우편으로 왔는데 이번에는 시력검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안경도 개비하고 검사를 받았다. 예상대로 오른쪽은 OK, 두 눈으로도 OK, 왼쪽 눈에서 걸렸다. 다시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면허증을 받으려면 운전 테스트를 받으라는 조건이 붙었다. 약속 날짜에 몇십년만에 운전시험을 또 받았다. 누군들 운전면허증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나의 경우는 한달에 두 번쯤 왕복 약 500마일 정도의 장거리로 LA에 가서 물건을 사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1주쯤 되어서 운전면허증이 우편으로 왔다. 운전면허증을 받은 기분은 이곳에 혼자와서 3년만에 영주권을 받았을 때와 버금가는 기쁨이었다.
얼마전에 고국에서 수술환자가 바뀐 흔치 않은 의료사고가 있었음을 신문에서 본 일이 있었다. 내 입장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니 절대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내가 눈 수술을 받는데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엉뚱한 눈을 수술하는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 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섬뜩했다.
한쪽 눈은 멀쩡하고 왼쪽 눈도 완전히 안 보이는 것은 아니고, 더욱이 DMV에서 “당신은 운전을 해도 좋소”하는 허락까지 받았으니 이것으로도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이 들면서 대충 이렇게 마음을 접으며 사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는지.
최정조 / 엘 센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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