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WBC 대회에서 한국팀은 6게임 무패로 승승장구하다 결승진출을 눈앞에 둔 4강 전에서 어처구니없는 WBC의 경기 방침 때문에 두 번씩이나 우리에게 패한 일본과의 세 번째 경기에서 패하는 아픔을 맛보게 됐다. 이를 보고 나를 비롯한 모든 한국인들이 마음 아팠으리라 생각한다.
이날 이 경기를 보러 거의 매진되었던 티켓을 힘겹게 구했다. 친구들은 ‘KOREA’라고 쓰여진 T셔츠와 한국팀 모자를 만들어 LA에서 극심한 트래픽 속에서 4시간이나 걸려 경기가 있는 샌디에고에 도착했다.
이날 따라 유난히 비가 오는 가운데 게임이 진행되었고 팽팽한 선수들의 실력 경쟁과 한국 대 일본의 응원 가운데 한 피치 한 타를 극도의 긴장감과 조바심 가운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김병현 선수가 던진 공이 홈런으로 이어지면서 4점을 내주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연속되는 2 실점에 한국 팬들이 낙심한 가운데 비까지 심하게 내려 절반이상의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결국 비가 너무 심하게 내려 게임이 잠시 중단되었고 구장이 거의 반 이상 비어 있었다. 침울한 분위기에 경기가 다시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어디선가 “대~한민국 따따~따 따따”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미했지만 계속되는 응원에 점점 합세하여 흩어져 있던 한국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빈자리가 하나 둘씩 채워지면서 대 응원단이 형성되었고 나중에는 스테디엄 전체가 떠나가라 천둥 같은 함성이 되어 메아리 쳤다.
이를 지켜보던 미국 관중들은 “Amazing! Amazing!”하며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항상 승자에게 박수와 갈채를 보내지만 패배자에겐 낙심과 실망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늘 이 경기장에선 한국인들이 모두 하나의 함성이 되어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이날 비록 한국야구는 졌지만 이것은 한 야구 게임에 대한 응원이 아니었다.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똘똘 뭉쳐 한국을 응원하는 열화 같은 나라 사랑의 산 증거였다. 이날 우리는 이 경기에 참석했던 모든 일본인과 미국인들의 뇌리 속에 대한민국이 무엇이고 한국인의 저력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자리매김 하고 왔다.
최후까지 힘껏 뛰어준 한국팀에게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앞으로 나는 한국이 관여된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팬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야구건 축구건 공연이건 이기건 지건 상관없다. 한국이 세계를 향해 디디는 한보 한보에 열화 같은 응원과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정주영/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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