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숭 목사(콘트라코스타장로교회 담임목사)
어떤 글에서 본 것이다. “문명의 기원을 역설적으로 얘기하는 이들은 학문을 ‘궁금한 사람들’ 때문에, 과학 기술은 ‘게으른 사람들’ 때문에, 그리고 스포츠는 ‘심심한 사람들’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심심해서 만들어진 스포츠가 이젠 조직적으로 시행되고, 돈벌이의 수단이 되며심지어 국가적 자존심을 견주는 도구가 된 것도 또 하나의 역설이다.
어떤 다른 스포츠보다 축구는 그 점에서 최고의 예가 된다. 2002년을 기억하는가? ‘빨강색 증후군(red color syndrome)’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면서까지, 온 국토가 빨갛게 물들었던 그때 그 장면은 추억만 해도 우리의 가슴을 여전히 울렁거리게 한다. 비단 우리나라뿐인가? 축구 때문에 전쟁이 나고, 축구 때문에 민족적 화합도 가능해진다. 공 하나 놓고 스물두 명이 발로 뛰는 그게 뭐라고, 4년마다 온 지구가 들썩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한 사회학적인 분석을 해낼 겨를도 없이,그로부터 벌써 4년이 흘러 또 한번의 들썩거림을 해야 할 때가 오고야말았다.
지난 토요일, 태극전사들이 이 지역에 와 그 들썩거림의 전초전(?)을 한바탕 치르고 떠났다. 그 자리에 갔던 나로서 가졌던 대표적인 경이감은 “야, 북가주에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였다. 다른 지역에 여행가면 그곳 사람들이 꼭 묻는다. “목사님 사는 그 곳은 한인 인구가 얼마나 됩니까?” 이는 물론 궁금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심 자기 사는 그곳이 여기보다 어쨌든 더 낫고 싶은 숨은 저울질로 인해 나오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하는 나의 답변. “글쎄요, 한 10만은 넘는다고 하던데요…” 북가주의 공공기관, 언론기관마저도 잘 파악이 안 된다는 한인 인구를 어림잡아 이렇게 말하면 듣는 그들 대부분은 깜짝 놀란다. 그러나 그날, 나는 그런 나의 어림잡음이 상당히 근거 있는 것이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랜 내전에 신음하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가 이번 월드컵으로 인해 평화를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1999년 군부 쿠데타 이후 끊임없는 내전으로 인해 내홍을 겪어온 이 나라가 금년에는 강적 카메룬을 꺾고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그동안 수많은 외교관들과 선교사들이 그 갈등을 중재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다 허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국들은 물론 유엔마저도 이번 월드컵은 그 갈등을 무마시킬 ‘평화의 사도’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단다.
이민사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스트레스 뭉치다. 갈등이 많은 현장이다.
2002년, 당시 힘들었던 조국도 ‘평화의 사도’ 월드컵 축구로, 그간 쌓였던 국가적 스트레스를 풀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스트레스 뭉치를 그 평화의 사도 앞에 다시 한번 내던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토요일에 그 예행연습까지 했다. 그래서 더 감사하다. 이번 6월에 또 한번 기대해본다.
이번 예행연습을 토대로, 그때 우리 모두 본격적으로 우리의 갈등과 스트레스를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물론 우리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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