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는 유난히 많은 비 바람이 몰아쳤다. 마치 지난 1년이 폭풍우와 다름없었다는 듯이…. 공허한 현실은 공허하게 사라진 지난 날의 그림자만 남긴 채 또다른 공허의 내일을 향해 줄다름 칠 뿐이다. 인생에서 진실한 모습은 어디 있을까? 폭풍우일까, 아니면 마지막 잎새… 절규하는 감상일까? 아니 인생이란 어쩌면 철학적 진실이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거리의 악사처럼 한 소절의 소야곡에 울고 웃는… 애처로운 로망스의 한 조각… 강상에 불과한지 모른다.
클래식 음악은 크게 2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브람스 풍의 내면적인 선율, 모차르트 풍의 외형적인 선율이 있다. 여류 소설가 샤강은 브람스를 널리 소개하기도 했지만, 너무 투박한(선율) 브람스는 그렇게 인기있는 작곡가는 아니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브람스를 가리켜 ‘재능없는 자식’이라고 혹평했다는데, 당신도 만약 선율미에 익숙한 귀를 가진 사람이라면 브람스의 음악을 10분도 참아낼 수 없을 것이다.
조금 도도하다고나할까, AM 장파같다고나 할까, 브람스에서는 선율의 선명도, 순발력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어느 순간, 소년의 감상으로 돌아가 전원에서 평화롭게 매미 소리를 듣고있는 듯한 환상에 빠져있면, 브람스의 음악을 한번 들어보라. 지상에서 그처럼 순박하고 따스한… 영혼에 울리는 감성의 소리도 없을 것이다. 브람스는 선율미보다는 내면에 울리는 감성을 통하여 독일의 위대한 3’B(바하, 베토벤, 브람스)’로 남게 되었다.
인생은 다소 대위법적이다. 현실은 현재와 과거, 환상의 랑데뷰다. 오늘 이자리는 단순한 현재만의 우리는 아니다. 그 속에는 과거의 아팠던 순간, 희망으로 불탔던 청춘으로서의 질료가 뭉쳐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청소년시기의 감상에 젖어든다는 것은 다소 서글프다. 너무 벅찬, 감상의 낭비가 너무 서먹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품 ‘로망스(F 장조)’를 들어본지도 어언 20여년이 지난 것 같다. 나이를 먹을 수록 과거에 즐겼던 감상적인 음악을 듣기가 쉽지 않다. 정서가 메말라 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생이란 뭐 그저 그런거지’하는 시니컬한 의식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들어보아야 한때의 퇴색해 버린, 감정의 서먹함만 만날 뿐이지만 당신이 만약 어느 순간, 마치 브람스의 음악을 듣듯 푸른 들판을 마음껏 내달리는 소년의 감상으로 돌아간다면, 로망스에 도취해 보는 것도 감상의 낭비만은 아닐 것이다.
베토벤의 음악은 브람스쪽일까, 모차르트쪽일까? 아마 이 양쪽을 모두 갖춘 작곡가였을 것이다. 베토벤은 투박한 외모와는 달리 아름다움(선율미)를 몹시 사모했던 작곡가였다고 한다. 그의 초기작품에 속하는 로망스에서는 더욱 한껏 멋을 부린 베토벤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데, 이작품은 여성의 순수한 사랑을 열망했던, 베토벤의 로맨틱한 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2편 G장조와 F장조의 로망스중 G장조는 조금 투박하지만 내면적인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브람스의 음악을 듣는 듯 하다고 할까, 귀에 번쩍드는 아름다운 선율은 없지만 어딘지 따사로운 감성은 2번(F장조)에 없는 촉촉함으로 가득하다. 2번 (F장조)은 화려함을 한껏 뽐내고 있는 작품이다. 로망스가 작곡되던 시기는 베토벤이 청각에 이상이 생기면서 ‘하이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던 시기였다. 아마도 불가능한 ‘로맨스’를 예견함 때문이었을까? 유난히 감상에 젖어있다. 마치 현실의 아픔, 절망을 선율 속에 승화시키고 있다고나 할까, 베토벤의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실존적 투쟁보다는 타오르는 감성으로 충만해 있다. 베토벤은‘로망스’이후 더 이상 아름다운 곡은 쓰지 않았는데, ‘로망스’는 마치 청춘과의 이별을 대신하고 있는 듯 하다.
F장조는 처음 부터 다소 멋을 부린 듯 화려함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현실에 대한 아쉬움, 절망등이 랑데뷰 되어 있다고할까, 불안하지만 아직 미래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듯 멜랑콜릭한 감상이 대위법처럼 녹아있다. 듣기에 따라서 슬픈 듯 하면서 또 마치 첫 사랑에 빠져있는 듯 아름다운 시정이 한껏 토로되어 있다. 베토벤의 선율적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인데 비록 보편적인 ‘미’를 표현했을 망정 아름다움에 대한 진지함이 감동을 준다. ‘나의 왕국은 공중에 있다’고 외친 베토벤에게 ‘로망스’는 아마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베토벤의 다양한 요소가 응축된, 절망 속에서도 행복한 감정이 잠자리처럼 무한히 날개를 펼치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1978-1802년 사이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연주시간 9분의, 비교적 짧은 바이올린 소품 중의 명작이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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