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이 하루를 새벽 기도로 시작하고 있다.
“4시면 어김없는 기상 나팔수”
도시는 생명체다. 사람 냄새 가득한 도시는 콘크리트 사이로 긴 숨결을 뿜어내지만 사람이 잠든 도시는 무미건조한 콘크리트일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민족으로 소문난 한인들이 만들어가는 LA한인타운, 그곳의 숨결통 24시간을 시간별로 나누어 5회에 걸쳐 추적해 본다.
새벽기도 교인들·해장국집 단골들
정적감도는 타운 공기 가르며 하루시작
5시 지나자 공원마다 운동 동호인들
새벽 5시부터 배드민턴 ‘땀 뻘뻘’
‘뉴욕증시 어떻게’모니터에 온신경
한인타운의 ‘허파’가 기척을 느끼기 시작하는 새벽 3시30분. 올림픽가에 위치한 작은 교회인 밀알교회는 새벽 기도를 드리려는 목사의 발자국 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청년 사역을 위해 한인타운으로 옮겨 온 이상훈(51)목사는 속죄와 감사의 기도로 어둠과 빛의 경계가 모호한 새벽을 두드린다.
같은 시각 24시간 내내 불이 죽지 않는 곳으로 사람들이 끊길 듯 말 듯 흘러 들어온다. 밤새 영업을 하는 알배네와 할매집 등 식당은 지난 밤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취객들이 북어국 등 속시원한 국물로 속을 달랜다. 이들 틈에서 밤샘 운전으로 졸린 눈을 비빈 운전기사들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며 하루를 마감한다.
새벽 4시. 누렁이들이 기지개를 펴고 ‘컹컹’하며 때이른 ‘고함’을 지르면 한인타운의 가정에도 붉은 조명등이 빛을 발한다. 새벽 예배를 준비하는 동천홍 매니저인 최만석(45)씨가 부스스한 얼굴을 단장하고 집을 나서는 시간도 이즈음이다.
11년 동안을 LA 사람들보다 세 시간 더 빠른 인생을 살아온 재정상담가 김주홍(40)씨도 뉴욕 증권시장의 개장에 대비해 눈을 뜬다.
김씨는 “새벽 4시30분까지 출근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게을러진 것”이라고 말해 올빼미족들을 머쓱하게 한다. 벗이자 동지인 월스트릿 저널은 이미 새벽 3시30분부터 집 앞에서 김씨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아침형 인간들이 부산을 떠는 새벽 5시, 검은 하늘은 푸르른 제 모습을 드러낸다. 밤새 차가웠던 한인타운의 바닥도 한인들의 발자국 온기로 잃었던 혈기를 되찾는다.
라파엣팍에서 한인 배드민턴 동호회원들이 운동에 여념이 없다.
<이승관 기자>
웰빙시대를 반영하듯 아침은 트레이닝복 차림의 한인 점령군 세상이다. 한인들은 새벽 5시 아드모어 공원과 라파옛 팍으로 하나, 둘 몰려 온다. 10년 동안 라파옛 팍의 5시를 차지하고 있는 라파옛 팍 대한배드민턴 클럽의 윤주명(85)회장은 능숙한 손길로 공원의 불을 밝히고 배드민턴 네트를 걸기에 여념이 없다. 윤 회장의 손길이채 달궈지기 전 하나, 둘 나타난 한인들이 윤 회장을 거든다. 윤 회장은 “비오는 날 빼고는 매일 나와”라며 클럽 회원들의 새벽나기를 설명했다.
새벽 5시 30분 천경숙(75)할머니가 라파옛 팍에 모습을 드러낸다. 산책하러 나왔다 배드민턴족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 합류했다는 천 할머니는 “운동이 늙는 것도 막는다”며 배드민턴 채를 휘둘러댄다. 신바람이 공원을 가를 때 동양선교교회에서는 최씨가 예배에 여념이 없다. 최씨는 “습관이 된 새벽 기도가 하루를 편안하게 만든다”며 새벽 찬미에 나섰다.
겨울 해는 하늘 속에 숨은 채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새벽 6시 오고 가는 이웃들의 얼굴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신선한 공기를 마신 최씨는 한인들의 배를 채울 신선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다운타운으로 향한다. 김씨는 뉴욕 증시가 시작하자마자 살짝 뗏던 눈을 모니터에 고정시킨다. 한인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커피 한 잔의 향기가 도처에 깔리기 시작한다. 밤새 휴식을 취했던 한인타운의 허파가 한인들의 숨결에 발 맞춰 힘찬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한인타운의 떡집 종업원들이 이른 새벽부터 유과를 만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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