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재앙이나 전쟁이 아닌 다음에는 대부분의 역사는 모르게 이루어진다. 우리가 이렇게 모르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경사가 지난 12월14일 워싱턴 D.C.에서 일어났다.
1903년 1월13일 첫 한인이민들의 하와이 도착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던 한인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모태로 한 미주 한인재단의 수고로 미국 각 지역들은 1월13일을 미주한인의 날 (The Korean American Day)로 기념해오고 있었다.
이것을 지역별 경축일에서 아일랜드 계의 성 패트릭 데이처럼 전국적 기념일로 결의한 것이 일년 전이었다. 이는 연방의회의 인준이 필요한 일이니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동안 연방의원들과 꾸준한 협의를 계속했다.
그 결과로 연방 하원에서는 탐 데이비스 하원의원(공·버지니아)이 주도하고 에드 로이스(공·캘리포니아) 찰스 렌젤(민·뉴욕) 마이크 카푸아노(민·매서추세츠) 의원들이 공동 스폰서로 하원 결의안 487을 제출한 것이 12월13일이었다. 이날 하원은 결의안을 405대0의 만장 일치로 가결하였다. 연방상원에서는 조지 알렌 상원의원(공·버지니아) 테드 스티븐스(공·알래스카), 대니얼 이노우에(민·하와이), 민주당의 거두 에드워드 케네디(매서추세츠) 상원의원들이 상원결의안 283을 제출, 다음날 12월14일 만장 일치로 가결되었다.
이것으로 미주 한인들은 미 연방의회로부터 ‘미국사회 기여를 인정’받고, 한인이민 첫 미국 입항날인 1월13일을 전국적인 미주한인의 날 (The Korean American Day)로 책정 받게 되었다.
이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자. 일본 식민지 치하에서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포는 조선인들에게 1919년 3.1 독립 선언을 결의하게 한 직접적인 동기를 주었었다. 이때 미국에서는 1차대전 종료에 이어 윌슨 자결주의를 바탕으로 한 국제연맹 인준안이 연방상원에서 뜨겁게 논의되고 있었다.
이 기회를 포착하여 한인으로 미 시민 제1호 선각자였던 서재필 박사는 탁월한 영어실력과 친 조선 미 선교사출신 정치인들과의 넓은 인맥을 동원하여 1919년 9월 국제연맹 인준 안에 조선왕국 독립인정 수정안을 첨부하도록 로비 하였다.
당시 친 조선 인사들이 제일 많았던 오하이오 주 출신 오웬 상원의원이 ‘조선 수정안’을 상정하여 표결에 붙이게 까지 되었다. 그러나 조선수정안은 34대 46으로 부결되었다. 가결되었으면 조선이 국제연맹에 가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재미 한인 사회가 미국 시민 사회 일원으로 미 의회에 자기 이익을 로비 하여 법안제출에 까지 간 예는 서재필 박사의 ‘조선수정안’시도가 첫 번째이고 이번 미주한인재단의 ‘미주한인의 날’결의안이 두 번째이다. 86년만의 일이다.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은 이번 ‘한인의 날’ 결의안 가결이 지연될 뻔한 고비도 있었다. 북한인권운동의 선봉자인 샘 브라운 백 상원의원(공·캔서스)이 미주한인의 날 결의안에 북한인권 수정안 첨부를 제안하였다가 철회하였다. 이를 보면 연방의원들이 재미 한인들인 코리안 아메리칸과 한국을 구분하여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탈리아계, 독일계 등 다른 민족출신 미국인이나 마찬가지로 한국출신도 자기 유권자라는 의식이 지배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의 날 가결은 미 주류사회가 우리 한인들을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해준 상징성이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모국을 사랑하되 미주한인들은 미국인으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고 거기에 따른 현안들이 다르다. 이것을 깨닫고 이에 부응하는 사고방식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야 할 것이다.
모든 일에는 숨은 인재들의 노력이 있다. 미주한인의 날 전국 의장인 버지니아의 1.5세 해롤드 변(변희용)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한국말과 영어가 무도 유창한 변의장이 버지니아 주를 무대로 아시안 연합체를 이끌며 다년간 지역 정치인들과 쌓아온 교분이 큰 몫을 했다. 한인사회 전체가 자축할 일을 해냈다.
차만재
칼스테이트 프레스노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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