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핀 고씨, 자폐 아들 치료위해 고전무용 배워
매달 양로원 방문… 노인들에 위로공연 60여회
벌써 5년째 양로보건센터를 방문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고전무용을 공연하고 있는 조세핀 고씨. 외로운 이웃을 향한 그녀의 춤사위가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손과 발의 동작 하나 하나에 아들을 향한 따뜻하면서도 남다른 모정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유학생과 결혼해 평범한 가정 주부로 지내던 고씨가 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세상 사람들이 새 천년 맞이에 들 떠 있던 1999년 12월. 당시 고씨는 세 살이었던 둘째 아들 윌리엄이 자폐증이라는 판정을 받은 뒤 절망과 실의 속에서 지내던 나날이었다.
고씨는 어느 날 ‘북치기가 자폐아동 교육에 좋다’는 기사를 보고 윌리엄에게 북을 가르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무용단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남학생은 받지 않는다는 학원방침을 알고 아들 대신에 자신이 직접 무용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는 시작이었다.
“기본호흡부터 시작해 다양한 춤을 배워갈수록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원망과 고통의 응어리가 무용으로 승화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는 고씨는 “처음에는 내 아들 바로 키우는 데만 모든 관심을 쏟았는데 어느 날 이웃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윌리엄을 돌보느라 집에만 있다보니 일찍 어머니와 사별해 홀로 외롭게 살던 아버지를 찾아 볼 기회가 늘면서 이민사회 노인들이 겪는 외로움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진 것.
“그 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춤밖에는 없었다”는 고씨는 2001년부터 기회만 있으면 양로병원과 양로보선센터를 찾아 공연을 펼쳤고 어느새 60여회를 무대에 올랐다.
고씨는 자폐증세를 가진 윌리엄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짧지만, 춤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 춤추는 시간은 윌리엄을 위한 시간 만큼이나 소중하다고 말했다. 이제 9세가 된 윌리엄은 이런 엄마의 헌신적 노력 덕분에 정규학교에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회복됐다.
하지만 고씨의 마음 한 가운데는 항상 아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자리잡고 있다.
“윌리엄이 어릴 때부터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심한 아토피를 앓고 있는데, 솔직히 계속 공연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렇게 하면 공연을 본 누군가가 윌리엄에게 좋은 약을 소개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라며 말끝을 흐리는 고씨의 눈가에는 어느새 이슬이 고였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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