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 성탄절 즈음에는 눈이 내렸다. 성탄 전야에 내리지 않더라도 그 때 쯤이면 눈이 쌓여 있었다. 교회에서 성탄축하 음악예배와 성극이 끝나면 맛있게 떡국을 끓여 주었다. 이윽고 성탄절 새벽을 맞으며 눈길을 걸어 교인들의 가정을, 대학 병원을 찾아가 새벽송을 불렀다.
그 아름다운 풍습이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서 사라져 조용히 맞던 성탄절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도 아기 예수 오시는 성탄절에는 밤새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릴 것 같고 어디선가 새벽송 소리가 들릴 것 같다.
내일은 성탄절이다. 모두들 한껏 들뜬 분위기이다. 교인들은 일년 중 가장 기쁘고 즐거운 명절인 성탄절을 뜻 있게 보내려고 준비하고, 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의미야 어떠하든 선물을 주고 받으며 즐겁게 떠들썩하게 보낸다.
12월로 접어들며 우리 동네는 연극 무대를 펼쳐 놓은 것처럼 성탄 축하 장식으로 요란하다. 마치 하늘의 별이 몽땅 내려와 앉은 듯 집집마다 불야성을 이룬다. 그 중에서도 오색 전구로 화려하게 장식한 한 아르메니안 가정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동네에서 가장 아름답다. 아기 예수가 침대 모양의 구유에 잠들어 있고 마리아와 요셉이 그 곁에 서 있다. 문 앞에는 동방박사가, 지붕에는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실은 썰매 위에 앉아 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에 아기 예수를 누군가 훔쳐갔다. 아침에 나와보니 아기 예수가 누워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어 가족들이 몹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빈자리에 팻말을 붙여 놓았다.
“아기 예수를 도둑 맞았습니다. 제발 돌려주세요”
며칠 전까지 그 집 앞에는 멋진 성탄 장식이 아름다워 발길을 멈추던 사람들이 이 기상천외한 사건에 놀라 다시 한번 발을 멈추게 되었다. 성탄절은 다가왔는데 아기 예수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집 앞을 오가며 비어 있는 자리를 볼 때마다 알지 못할 씁쓸함이 스친다. 인형처럼 만든 아기 예수의 형상이지만 그것은 상징적이며 구주 성탄을 축하하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려고 오신 아기 예수를 집어가다니. 문득 은 30세겟을 받고 예수를 팔아 넘긴 가롯 유다가 생각난다. 혹여 예수는 없고 잔치만 풍성한 이 시대를 한탄한 사람의 짓일까. 아니면 메리 크리스마스를 할러데이로 표기하자는 사람의 짓일까. 착잡한 기분이 인다.
우리 가족이 한 때 살았던 영국은 성탄절 트리와 장식을 집안에 해 놓는다. 저녁 무렵 산책을 하게 될 때면 집집마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보이는 트리의 장식 불빛이 마치 멀리서 울리는 새벽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마음에 와 닿던 것을 기억한다. 집안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조용히 성탄을 보내는 영국 사람들과 집밖을 더 화려하게 장식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로 성탄을 맞는 미국 사람들은 아주 대조적이다.
성탄절은 기독교인들에게 일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명절이나 해마다 그 진정한 의미가 퇴색 되어가고 있다. 성탄을 맞는 우리는 선물과 파티의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임하신 아기 예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한다.
예수는 빠지고 잔치만 풍성하다면 성탄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지나친 상업주의의 선전으로 백화점이나 샤핑센터는 일년 중 최대의 대목을 맞는 계절로 탈바꿈한 채 흥청거리는 것이 안타깝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쓴 카드도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성탄의 본래 의미를 되새기는 차분하고 조용한 명절이 될 수는 정녕 없는 것일까.
성탄과 함께 며칠 있으면 한해가 저문다. 이맘때만큼은 우리 모두가 훈훈한 인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게 넉넉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소에 바빠서 잊고 지나치고 있었던 주위를 돌아 볼 때도 지금이다. 나눔의 아름다움으로 베풂의 넉넉함으로 여유 있는 성탄을 맞이했으면 한다.
성탄 트리 위에 수많은 불빛이 반짝인다. 저 나무 위의 불빛처럼 우리들 마음속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 하나를 간직하여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랑의 빛을 전하기 위해 다가가야겠다.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유숙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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