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서니 문득 내가 처음 이민 왔을 때 어느 선배가 들려준 말이 생각난다. “남 눈치볼 것 없이 할 수 있는 일 찾아 열심히 하고 나이 들면 노인 아파트 들어가면 되는 기라. 미국 사는 재미는 차 타고 돌아 댕기는 데 있데이.”
난 틈만 나면 차에 기름 가득 채우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인상파 화가 모네는 오묘한 빛의 색조 놀음으로 연못에 떠 있는 연꽃이 시시각각 변해 가는 모습에 매료되어 몇 날 며칠 자리를 뜨지 못했다고 한다. 넓디넓고 확 트인 미국 도로를 달려가니 볼 때마다 새로운 천연의 거대한 풍경화들이 여기저기서 아이맥스 화면처럼 펼쳐진다. 또 다른 그랜드 캐년이요, 자이언 캐년이요, 나이애가라 폭포다.
차창을 열면 맞바람에 숨이 허덕대지만 벤조소리 퉁기는 경쾌한 컨트리 음악은 찌든 근심걱정들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한다. 주말 아침 윗통을 벗어 던지고 론 그라운드를 달려보는 기분, 따스한 캘리포니아의 이른 햇살이 맨 등을 쓸어줄 때의 감미로움을 어디다 비견하랴.
영화 ‘스펜서의 산’(Spencer’s Mountain)에서 클레이로 분한 헨리 폰다는 장모 아이다를 보고 “나는 매일의 일상에서 천국을 경험하는데 아내와 키스하는 것도 천국이고 꼬마 녀석 끼고 잠자기도 천국이 됩니다. 스펜서 동산에 우리 집을 짓고 있는 것도 천국일 수 있겠군요”라고 말한다. 천국을 기다리지 않는단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란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미국에 살면 미국식”을 배우면서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직장 너무 가까이 집을 얻어 운전에 손을 놓게 되면 운전감각을 잃게 되어 “도로의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
한국 비디오 빌리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 영어나라에 살면서 영어와 친숙하도록 애쓰는 것도 유익하다. 항상 한국말 온실 속에서 살 수는 없다. 넋 빼고 TV 보고 인터넷 할 시간에 미국 문화도 체험 해보면 어떨까. 사소한 한국 문제까지 꼬치꼬치 따져 열 올려본들 아무런 소득이 없다.
정든 고향집을 떠나 이국만리 낯선 땅에서 아이들 공부시키고 돈 벌어 좋은 집, 좋은 차 타고 잘 살아보려고 일만 쫓아다니다가 살만하게 되니 불치의 병을 얻는다는 슬픈 아메리칸 드림도 있다.
건강하게 사는 방법 중의 하나가 ‘감사하는 생활’이라고 한다. 돌아보면 누구나 더불어 사는 이웃들일진대 내가 받은 축복을 불우한 자들과 나누는 것이 복된 삶이다. 행복은 숫자에 있지 않고 재산에도 있지 않다. 즐거워하는 불우한 이들과 함께 기뻐하는 곳에서 행복이 묻어 나온다.
임학준
LA카운티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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