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종목사 칼럼
많은 사람들이 결과주의의 신봉자가 되어 살아간다. 결과주의는 과정은 어떠하든지 결과적으로는 잘 되기만 하면 되는 것을 가리킨다. 즉 과정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설사 불법이 좀 개입된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성취해 내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상 많은 한국인들은 이미 결과주의에 익숙해 있다. 4-5개 답항에서 답을 잘 모를 경우에 연필을 굴려서 어쨌든 답이 맞으면 되었다. 용케 잘 맞아서 점수가 높으면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고 잘 못해서 점수가 낮으면 울상이 되었다. 명문대학이 인기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실력이 있어도 지명도 낮은 대학을 졸업하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명문대학 간판만 있으면 일단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결과만 가지고 말하므로 그래서 자신도 결과만 좋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 역시 다른 사람에 대해 평가할 때 결과만 살핀다. 오늘날 한국인들의 조급증은 이 결과주의 때문이다. 과정은 무시하고 어쨌든 빨리 좋은 결과를 내고 싶어 조급해지는데 막상 결과는 그 반대인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 500여명의 죽음이 있게 한 삼풍백화점의 붕괴사고는 결과주의의 결과였다.
성경 잠언에는 “지혜는 명철한 자의 앞에 있거는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잠 17:24)는 말이 있다. 유사하게 “풀을 베는 농부는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농부가 들판의 끝을 보면서 풀을 베면 언제 이 많은 풀을 벨 것인가 하며 미리 걱정부터 앞서고 맥이 빠지게 된다. 미련한 자는 먼 결과를 미리 내다보며 걱정부터 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바로 곁에 있는 과정에 성실하게 임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과정에 성실하며 올바른 것 자체가 이미 성공적인 삶이요 축복이다. 과정은 성실하게도 올바르게도 하려는 생각은 전혀 갖지 않은채 오로지 성공과 축복이 주어지기를 바라며 끝만 쳐다보는 것은 이미 실패의 삶이요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 성공과 축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으며, 미래의 결과에 있지 않고 현재의 과정에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실제로 도달할지도 안 할지도 모르는 곳을 바라보면서, 현재에서는 근심과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가. 결과주의자는 매우 어리석다. 성취될 가능성이 희박한 하나의 결과만 붙들고 그 결과가 기쁨과 축복을 줄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오늘도 내일도 근심과 고통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과정주의자는 지혜롭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일 일은 내일 맡겨 버리고 현재의 과정에 충실하면서 환상이 아닌 실제 오늘 주어지고 있는 기쁨과 축복을 누리면서 사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과정주의자가 되기는 어렵다. 너무도 오랫동안 결과주의가 몸에 배여 있기 때문이다. 등이 굽은 자가 등을 펴기가 매우 어려운 것과 흡사하다. 결과주의만 거의 요구되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과정주의자가 되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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