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면>현대시평설(5)
<시인 김용진>
---
▲시인의 생애
시인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중국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명동소학교, 광명중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京都) 도시샤 대학 영문과를 다니다가 1943년 7월에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2년형을 언도받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중 1945년 옥사한 시인이다.
윤동주는 중학교 때부터 동시와 산문을 써서 <가톨릭 소년>, <조선일보> 등 학생문예란에 작품을 발표, 그 때부터 그의 문학적 소양을 보여주었다.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가 작고한 3년 후인 1948년 간행된 시집이다.
윤동주 시의 특징은 당시 일제강점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시대적인 고뇌를 시적으로 형상화시키면서 현실의 괴로움과 삶의 비극적 상황을 내세워 자아성찰을 투명한 시어(詩語)로 표현했다. 그의 시는 흔히 저항시로 분류, 이해되고 있다. 대표시로는 <서시(序詩)>, <별 헤는밤>, <자화상>, >참회록>, <또 다른 고향>등이다.
▲윤동주 시(詩) 평설(評說)
시인 윤동주는 40년대 우리문학사상에서 누구나 겪어야 했듯이 꺾인 붓끝으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갈망하던 의지(意志)하는 초토(焦土)의 대표적 시상(詩象)이었다.
그는 일제의 탄압아래서 갱생(更生)할 조국의 하늘을 우러러 시대의 여백(餘白)을 ‘시인이랑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경건하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였다. 그리고 최후의 나(我)를 발견할 때까지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고 외치면서 산 설고 물 선 이역 땅에서 28년이라는 짧은 여생을 일기(一期)로 ‘도착해야할 시대의 정거장’을 향해 떠났다.
‘괴로운 사람아, 괴로운 사람아’ 이렇게 민족혼을 부르면서...
우리는 이 시인의 음성을 절규라고 해야 할까? 비정(非情)의 합창이라고 이름 해야 할까?
시인은 역사적 의미에서 예언자(豫言者)가 되어야 한다. 인간과 자연, 샘물들이 공존하는 세대에 있어서 푸른 기적(奇蹟)이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이유가 없는 것처럼 시인 동주(東柱)는 어둠과 밝음의 틈바구니에서 그러한 야합(野合)의 기적과 싸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저항하는 시정신은 암담한 정황(情況)에서 자기 존재를 자의식(自意識)으로나마 재확인하려 했다.
---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오.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시오.
그리고 한 침대에
가즈런히 잠을 재우시오.
<‘새벽이 올 때까지’에서 일부 발췌>
---
이처럼 그는 흑(黑)과 백(白)의 대위(對位)에서 죽음과 삶을 공존사상으로 규정하려 애썼다. 죽음과 삶의 동침(同寢)에서 얻어지는 존재절연(存在絶緣)의 의미, 사로잡을 수 없는 인간행위속에서 필연적으로 포착(捕捉)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예언했다.
이러한 사상은 또한 <라이러너, 마리아, 릴케>의 <백색여왕>에 있는 ‘삶 속에 있는 죽엄’인 것이다. 그의 이러한 관념은 생존착각에서 기인한 생존감각이 정서의 속박을 벗어나려는 현실참여이기도 했다.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전문>
---
위의 시에서 보듯이 그는 인간존재의 숙명적인 압력을 가진 우주에 인간의 애정을 던졌다. ‘시대는 슬퍼한 일도’없다면서 자기 부정(否定)과 자기 긍정(肯定), 인간과 우주를 대위(對位)로 하여 맞세워 놓고 용감하면서도 그러나 가녀리게 순교자적 인간정신의 영역문제를 던져 다시 자기자세를 표상(表象)하려 했다. 서로 맞서서 허덕이는 상하(上下), 즉 강약(强弱)의 명령과 굴복의 실존행위, 그 정신작용 속에서 우러나오는 유일한 자아의 발견, 곧 그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게는 괴로움이 없다’고 그는 조용히 말한다.
왜 하필이면 그는 자신에게 괴로움의 이유를 부정해야 했던가? ‘없다’라는 규정의 가치교감(價値交感)속에서 그는 괴로움으로 부정을 용해시키려 했다.
시인은 때로 외로운 생존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은 시인의 유일한 정신생활의 상황을 모색하는 정신의 자유이다.
그래서 자기를 불태우면서까지 한 개 이웃의 별이 되려고 고독한 시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려 했다.
양심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려는 순결한 삶의 절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해야 하는 그의 양심은 시대를 감당하지 못한 시인의 몸부림으로 나타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 싶어했던 그의 다짐 앞에 ‘오늘 밤에도 별’은 ‘바람에 스치우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만난다.
그 ‘밤’과 ‘바람’은 작자의 소망과 이상인 ‘별’을 시련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위의 시 <서시>는 작자가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그가 자선한 시집의 서문(序文)을 대신해서 쓴 작품이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시집 간행을 보여주지 못한 채 작고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