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Greer<캠블 거주>
아버지! 얼마만에 불러보는지 목이 메입니다.
그리워서, 보고싶어서 예전에 철없이 굴었던 것이 죄송스러워서, 그래서 아버지란 이름은 부를 때마다 목이 메입니다.
술이 얼큰해지시면, 청년시기 십 수년을 일본에서 보내셨기에 일본노래를 흥얼거리시면 우리들은 그 아버지를 이해 못해 일본노래 부른다고 구박했던 우리들, 어느새 내 나이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해 바로 그 나이가 되었네요.
아버지는 엄하시고 그래서 우리 형제들에게 무서운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7자녀 키우시면서 엄하셨어야만 했던 이유를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5자매들이 떠들고 말다툼으로 큰 소릴 내면 큰 애는 왜 동생들을 다스리지 못했느냐고 한 대, 작은 놈은 왜 언니한테 대드느냐고 가 두 대, 3째 4째도… 이렇게 체벌을 주셨던 아버지. 그때 나는 매도 아팠지만 딸들에게 회초리를 대시는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학고에서 돌아오니 얘 작은 애야, 오늘 아버지한테 극장표가 2개 생겼다 같이 갈래?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와 둘이 극장 관람한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요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가족들과 함께 전쟁을 3번이나 치르셨습니다. 8.15때 잘되는 사업을 팽개치고 남한으로 내려 올 때 죽을 고비를 몇 번인가 넘기면서 38선 경계를 지나 밤 불빛이 휘황한 개성시내를 들어섰을 때 안도와 환희, 그리고 6.25와 1.4 후퇴를 거치면서 아버지의 지혜로운 리더쉽 혹은 기지로 전쟁와중에도 7자녀 중 하나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6.25 때는 어머니 친정인 강화도로 피난을 갔었는데 내가 고열로 눕게 되자 다른 가족은 다 떠나보내고 아버지는 나를 간호하시느라 인천시내가 함포사격으로 불바다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내 곁에 계셨습니다.
아버지 너무 늦게 아버지의 깊으신 사랑을 깨닫게 된 것 정말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나의 야간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으시고는 큰 남동생의 고대 법대 합격통지와 똑같이 기뻐해 주신 아버지, 지금의 남편과 독일에서 결혼생활중 얼마 안 되는 돈을 동생들이 대학학비로 보태시라고 몇 번 보냈을 때 작은 애야. 여기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여기는 우리나라다. 그러니 우린 어떻게 하던 살 수 있지만 너는 객지에서 아이들과 잘 살아야 한다. 그러니 집에 돈 보내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 때 아버지의 그 편지 받고 딸을 사랑하시는 배려에 얼마나 울었던지요.
끝이 없고 한이 없는 아버지와의 기억! 아버지!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도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김동명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아주 편안히 눈 감으셨으니 저 하늘나라 아버지 집에서 곧 뵙게 될 것 생각하고 아주 가끔은 가슴 설레이면서 그 곳에서 사랑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상봉할 그 날을 기다립니다.
아버지의 둘째 -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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