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의 한 환자가 전화 통화 시마다 흥분해서 수화기를 내던지고,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에게도 화를 내며 공격적인 언어를 써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아침 회진 시간이 되니 ‘전화사용 횟수 제한’을 처방한 인턴과 ‘전화기를 쓸 수 있는’ 환자의 권리를 내세운 스텝이 나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사용 제한’을 확인해 주자 스텝 한사람이 “이것이 환자권리에 위배되고 병원이 환자권리 위원회로부터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내게 반발했다. 나는 “여기는 인권위원회가 아니고 병원이다. 의사는 병원에서 질병치료와 환자 보호를 위한 오더를 내리는 것이다”고 했다. 그랬더니 “왜 닥터 정은 환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오더를 내느냐”고 또 반발한다.
나는 간단히 답했다. “환자의 권리보다 더 중요한 것, 즉 인권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 바로 인간이요, 인간의 생명, 즉 이 환자는 물론 다른 환자들과 간호사들의 안전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환자가 차라리 죽겠노라며 심장 치료를 거부한 적이 있었다. 면담을 해보니 환자는 심장치료를 안 받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으리라는 것도 알고, 치료 이외는 대안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망상으로 인한 현실감 결여도 아니었다. 심장 내과의 의견으로는 치료자체는 간단한 데, 시기를 놓치면 심각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법원의 판정을 기다릴 만큼 여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응급치료를 적용할 조건도 아니라고 했다.
입원자체가 자의 입원이라서 본인이 치료를 거부하면 퇴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망상으로 인한 정신증(미친)의 경우도 아니라서 강제 입원으로 전환하는 것에도 법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치료 거부 및 퇴원 여부의 갈림길에서 나는 강제 입원으로 일단 방향을 바꾸었다. ‘심장병 치료 승낙 여부를 결정할 정신능력의 결함’을 근거로 잡았다. 물론 엄격히 따지면 법적인 근거가 약하다. 이런 약한 근거로 강제입원을 시키는 것은 환자인권 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된다고 병원당국은 내게 귀뜸을 준다.
궁여지책으로 카운티 검사에게 전화문의를 하니, “인권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생명에 관한 결정은 의사가 해라, 그런 문제로 우리가 의사들을 간섭할 만큼 한가하지는 않으니 네가 결정해라”고 했다.
강제치료로 시간을 벌면서 점차 우울 증상 회복을 보니, 환자 자신도 심장치료를 받는 방향으로 급기야는 마음을 바꾸었다. 회복해서 퇴원하는 환자를 보며 ‘인권보다 더 귀중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인권이라는 큰 명제에 눌려서 인권이 마치 유일한 그리고 최상의 진리인줄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의 인권 위원회에서 경찰, 소방관 등 채용에 신체조건에 따른 차별화 규정을 없애라는 권고를 냈고, 경찰국, 소방국에서 반발이 있다고 들었다. 인권과 관련, 소방관 내지 경찰관 채용 규정에 대한 논란은 미국서도 한동안 이슈화 된 적이 있었다. 이번 한국 인권위원회의 결정은 미국의 복사판을 보는 듯 하다.
소방관이나 경찰관이란 직업은 자신도 위험하지만 위험에 처한 시민을 구하는 직업이다. 현대화 된 장비를 쓰더라고 물리적인 힘이 필요한 때가 허다하다. 더불어 정신적 안정과 기지와 용기 그리고 사명감도 있어야 한다.
인간과 인명을 위주로 판단한다면, 이런 일을 위해서 뽑는 공직자가 직무 수행을 위한 최상의 신체 조건은 물론 정신적인 조건까지도 갖추어야 한다. 물론 인권과 평등이란 관점에서만 보면 이런 신체적, 지적, 정서적인 조건을 고려한 선발 규정 자체가 신체조건과, 지능, 성격에 따른 차별로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
이에 대한 답이 바로 ‘인권이나 평등보다도 더 귀중한 인간’이라는 전제이다. 그리고 인명과 안전이다. 인권위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인권보다 더 상위의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정균희/UCLA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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