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지면 하루를 반성하고, 연말이 가까이 오면 한해를 결산하고, 나이가 들면 인생을 되돌아보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다.
며칠 전 시추 강아지 두 마리를 샀다. 한 마리를 사러 갔는데 남매가 떨어지면 얼마나 슬플까 생각이 들어 두 남매를 샀다. 며칠 후 생일을 물어보려 어미개가 있는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강아지들이 울지 않고 잘 지내느냐고 했다. 잘 논다니까 어미를 잊었나 보다 하면서 어미 개는 새끼를 찾으려고 울면서 안절부절못한다 한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히며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잠시 상념에 젖었다.
이민 올 때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 보지도 못하고, 전화 자주 못하고, 찾아 뵙지도 못하고, 몇 년이 흘러 안정을 찾아 가려 할 때는 이미 병상에 계실 때였다.
부모님께서는 자식 걱정에 잠도 못 주무시고 얼마나 안절부절못하셨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지금 여든이신 장모님만 혼자 계시니 더 후회하기 전에 내년에는 꼭 찾아뵈어야겠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지난 1일 타계하신 대여 김춘수 시인의 ‘꽃’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시 구절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25년 전 아내가 내게 보낸 연서에 이것을 적어보냈다. 아내는 나에게 잊어지지 않는 눈짓이 되고 싶었나 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정 반 합을 이루고자, 서로가 화내고 미워하며, 돌아앉아 울 때면 불쌍하고 후회되고, 하면서 서로 위하고 사랑하면서, 그리고 미국 땅까지 와서 고생할 때면 아내의 손을 잡아주며 희망을 가지게 하면서, 참 세월이 빠른 것을 느꼈다.
우리는 잠을 잘 때 이런 말을 한다. ‘두 사람이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전 4:11) 바쁘게 살면서 서로가 감춰진 귀한 보배인 것을 모르고 사는 날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서로 사랑하며, 귀하게 여기며 살아보자.
며칠 전 고국에서 수능시험 부정으로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추운 겨울에 감옥 가는 것을 볼 때 부모로서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우리의 교육제도를 탓하기 이전에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왔는가를 뼈를 깎는 아픔으로 반성해야겠다.
흔히 자녀교육 때문에 이민을 왔다고 하는데 살기 바빠서 어린아이들을 혼자 집에 있게 하지 않았나 뒤돌아보아야겠다. 부모들에게 많은 스트레스가 있지만 자녀들에게는 더 많은 스트레스가 있다는 말을 딸아이에게서 들었을 때 책임이 무거웠다.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전 7:29) 정직하게 살도록 가르쳐주자. 부모도 정직하면서 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