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듣고있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마치 영혼에 밀어닥치는 혁명적 폭풍우라고나할까. 공산주의는 실패했으나 러시아가 낳은, 최대의 수확 중의 하나가 바로 쇼스타코비치(1906-1975 露)였다. 약관 20세에 교향곡 1번을 작곡, 서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쇼스타코비치는 공산주의 음악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서구에 당당하게 내보인, 20세기 러시아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였다.
서구는 러시아(혁명)에 야멸 찬 시선을 보냈으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만큼은 열광해 마지않았다. 쇼스타코비치야말로 사회주의 정신, 철의 장막 속에서도 기개를 잃지 않고 순 음악의 열정을 지켜나간 진정한 혁명주의 작곡가였기 때문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과연 형제애란 무엇인가…, 개인이 하나가 되어 전체로 화합해 나아가려는 열정이란 무엇인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개별적인 감정, 개인의 의지가 파편처럼 분해되어 하나로 뭉쳐 용암처럼 분출하는 쇼스타코비치 음악이야말로 혁명음악의 대명사, 인간 승리의 감동 그 자체였다.
쇼스타코비치는 결코 부드럽고 감상적인 음악을 남긴 작곡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기계처럼 차갑고, 무겁고 어둡다. 피의 혁명만큼이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차갑고 섬뜩하다. 대륙적 장쾌함… 영혼을 얼어붙게 하는 북극적 서정… 폭발하는 희열은 영혼에 혁명처럼 밀어닥친다. 마치 개조된 정신(사회주의)의 자부심이라고나할까.
쇼스타코비치는 광산기술자였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9살 때 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14살때 페트로그라드 음악원에 입학, 졸업 작품으로 내놓은 교향곡 제1번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뒤 10월 혁명을 기념한 교향곡 제 2번 등으로 혁명작곡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쇼스타코비치는 오페라 ‘레이디 멕베드’ 작곡이후 공산정권의 비판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같은 사상적 곤경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작곡한 작품이 바로 ‘교향곡 5번’이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낭만파도 아니고 불협화음 일변도의 현대(전위)음악 작곡가도 아니었다. 사조는 20세기, 작풍은 고전풍을 고수했다. 힘찬 기개, 장대한 스케일은 사회주의적 예술가가 아니고서는 구상 할 수 없는 행진곡 풍의 힘찬 역동력, 냉혹한 절도를 지키고있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거론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바로 교향곡이었다. 물론 쇼스타코비치는 오페라 ‘레이디 맥베드’,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 10곡의 현악 4중주 등 수많은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으나 쇼스타코비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교향곡 분야였다. 쇼스타코비는 그의 69년 생애 중 모두 15곡의 교향곡을 남겼고, 그중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이 바오 교향곡 5번과 7번, 13번(바비 야르)등이었다. 특히 교향곡 5번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에 이어 제 2의 운명 교향곡으로 불리우는 20세기 최고의 명작 중의 하나이다. 쇼스타코비치 역시 베토벤을 존경하여 여느 교향곡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교향곡을 심각하게 사숙했는데 5번은 그중 투쟁적 이념과 환희를 결합시킨, 가장 베토벤다운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감각, 기교보다는 창의력, 기개로 밀고 나가는 쇼스타코비치음악의 성공은 쇼스타코비치의 천재적인 재능 탓이지만 폐쇄된 세계 속에서의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는 강렬한 페이소스야말로 쇼스타코비치의 인기를 유지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들은 모두 들을 만하지만 특히 5번과 13번 등이 권하고 싶은 작품들이다. ‘바비 야르’로 불리우는 교향곡 13번은 반체제 시를 가사로, 성악이 가미되어있어 어딘가 서구적인 냄새가 풍기는 교향시적 대곡이다. 교향곡 5번은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20세기를 대표하는 교향곡으로서 혁명적 열정이 회오리치는 힘찬 기개가 큰 감명을 주는 곡이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5번에서 베토벤을 모방, 공화주의자였던 베토벤의 정신을 공산주의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투쟁과 승리를 주제로 하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었고 우람한 기계가 서로 부딪치는 듯한 역동력, 방대한 스케일 등은 베토벤을 능가했다. 4악장에서 터지는 활화산의 분출도 베토벤의 5번과 어딘가 닮았으나, 베토벤의 것이 개별적이고 인간적인 것이었다면 쇼스타코비치의 것은 보다 전체적이고도 이념적이었다.
20세기의 공허, 피의 혁명을 거친 작곡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무한대의 긍정… 이것이 강요였던 자의였던 천재가 아니면 탄생시킬 수 없었던 20세기의 기념비였다.
쇼스타코비치야말로 20세기의 공허, 사상적 위기를 음악으로 극복해나간, 혁명의 불꽃이자, 가장 멋지고도 힘찬 작품을 남긴 음악가라 하겠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