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바하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바하’라고 하는 고유명사가 오히려 서먹하게 느껴진다. 바하… 바로크… 브란덴브르크 따위의 명사적 의미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다만 바람소리와 같은 소리의 여운만이 꿈처럼 피어오른다. 그의 음악은 아마도 처마 위에 떨어지는 가랑비일 것이다. 낡은 탁자에서 들쳐보는 그림책…, 작은 창문에서 바라보는 별 빛이라면 맞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음악이 있다면 아마도 바하의 음악(소품)들일 것이다. 결코 어려운 부분이 하나도 없다. 마치 시냇물 처럼 자연스럽고 즉흥적이다. 가끔은 너무 쉬워서 민숭맨숭하게 들려올 때도 있지만 바하의 음악이야말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음악의 아버지… 바하만이 창출할 수 있는 인류의 고향의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지난주 KAMSA가 주최한 손민수 피아니스트 리사이틀은 오랜만에 음악에 흠뻑 젖어들 수 있었던 소박하고 알찬 독주회였다. 비록 많은 관객들이 참석하지 않아 썰렁하긴 했으나 오히려 음악에 집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따스한 실내악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연주회에는 리스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연습곡’을 중심으로 바하의 무반주 파르티아 2번(샤콘느), 슈베르트의 소나타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작품등이 연주됐다.
첫 번 순서로 연주된 바하의 샤콘느는 원래 바이올린을 위한 곡을 부소니가 편곡한 곡이었다. 피아노음악으로 전환, 원작의 아름다움이 다소 격감되기는 했으나 워낙 아름다운 선율이 가득, 음악회의 분위기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바하는 미사곡과 칸타타, 수난곡 등 수많은 종교음악을 남겼으나 협주곡과 관현악곡을 비롯 무반주 파르티타등 소품 작곡가로서도 가히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은 선율적인 아름다움으로 명성 높아 하프와 기타… 피아노 등으로도 편곡, 널리 연주되고 있는 곡이다.
바하의 소품 중에서 들을 만한 곡이 우선 바이올린 파르티타를 비롯 6곡으로 이루어진 무반주 첼로 조곡 등을 꼽을 수 있다. 바하의 첼로 조곡은 파블로 카잘스에 의해 발굴되어 2백년만에 빛을 본 작품으로 1번과 3번, 4번, 6번 등이 유명하다.
1889년의 어느날, 당시 13세였언 파블로 카잘스는 바르셀로나(스페인)의 한 악기점에서 헌 악보를 뒤지다가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200년 동안이나 잠자고 있던 ‘무반주 첼로 조곡’ 의 악보를 발견했다. 카잘스는 당시 멘델스존이 발굴한 ‘마태 수난곡’에 견줄만한 이 위대한 발견에 감격, 12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세상에 발표, 일약 스타덤에 올려놨다.
바하의 무반주 (현악)곡들을 들어보면 말 그대로 반주가 필요없는 소박하고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지나치게 화장기가 없어 다소 낯설 때가 있으나 시냇물처럼 자연스러운 선율미가 ‘형님’…, ‘친구’의 연주를 듣는 듯 하다. 마치 2백년간 묻혀있으면서도 결코 사라질 수 없었던… 신의 선택받은 음악이라고나할까. 바하가 주는 맛은 거절할 수 없는 보편성… 즉 고향의 그 맛이다. 수많은 종교음악으로 길들여진 신에 대한 예찬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바하의 음악이야말로 바하의 말대로 ‘신이 주신 최대의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바하의 음악은 서정미 외에도 창조적 기발함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브란덴브르크 협주곡같은 곡은 가장 과학적인 곡으로 정평이 높아, 우주에 존재할지 모르는 외계인(?)에게까지 소개되고 있다고 한다. 앙드레 지드는 소박한 바하의 음악을 으뜸으로 꼽았고, 베토벤도 바하의 예술에 사뭇 고개 숙이며 가슴이 뛴다고 고백한 바 있었다. 특히 바하가 남긴 첼로 조곡 등 소품들이야말로 연주자 자신 만이 들으라고 신탁 받은… 실내음악의 진수가 아닐 수 없다. 치 단 한사람의 관객만을 위하여… 낡은 다락방… 회색의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기타 소리 같다고나할까.
바하의 소품들로서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영국 모음곡, 프랑스 모음 곡등 수많은 작품이 있고 이외에도 평균률 피아노 곡집이 유명하다. 연습용으로 널리 연주되고 있는 평균율은 새삼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이고, 그 중 1권의 첫 곡은 구노가 ‘아베마리아’로 편곡하여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바하의 음악은 ‘아베마리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극도의 단순함 속에 지극한 자연스러움이 스며있다. 지나친 과장으로 역겨운 낭만파 음악보다도 더욱 낭만적으로 들려오는 것이 바하의 음악이다. 마치 딱딱한 마음을 녹여주는 햇살에 비교할 수 있을까.
바하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외에도 기타, 트럼펫 등 수많은 악기를 위해 소품들을 남겼는데, 이는 일일이 열거하기에 부족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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