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학 후배로부터 감사절에 관한 전자메일을 받았다. 아름다운 사진들과 함께 보내온 감사의 내용들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만일 당신의 냉장고에 먹을 음식이 있고, 입을 옷이 있고, 지붕이 있는 잠잘 곳이 있으면, 당신은 이 지구상의 75%의 사람들 보다 부자입니다. 만일 당신이 은행과 지갑에 돈이 있고 접시에 얼마의 잔돈이 있다면, 당신은 지구상에서 최고 8%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당신이 아침에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나면, 당신은 이번 주에 생명을 잃을 백만의 사람들 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만일 당신이 전쟁의 위험이나 감옥에서의 고독함 또는 고문의 고통이나 배고픔의 고통을 맛본 경험이 없다면, 당신은 이 지구상에서 5억의 사람들 보다 좋은 조건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만일 당신이 괴롭힘이나 체포, 고문 또는 죽음의 두려움이 없이 교회에 출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지구상에서 30억의 사람들 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이의 손을 잡거나 껴안든지 또는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을 수 있다면, 당신은 아직도 치유의 손길을 베풀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감사의 내용을 읽어 가다 보니, 지난여름 과테말라 의료선교여행에서 경험한 일들이 생각났다.
어느날 우리 의료 선교팀은 한 빈민촌을 방문했다. 아침부터 500여명의 현지 환자들이 의료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못 되어, 20대 초반의 한 젊은 여인이 허름한 차림으로 어린 아들을 부둥켜안고 병실로 들어 왔다.
그녀는 밖에서 어린 아들을 안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느라 온 몸이 비에 젖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안타까움과 절망 그리고 눈물로 덮여 있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아이의 얼굴에도 전혀 핏기가 없었다. 아이의 입술은 바싹 말라서 아예 회색빛에 가까웠다. 헐렁한 티셔츠와 낡은 잠바에 가려진 아이의 몸에서 윤기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이는 몸을 가늘게 떨면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눈은 서서히 초점을 잃어 가고 있었다.
70회 해외 의료선교 베테란인 소아과 전문의 닥터 윤 얼굴에도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의료 선교팀 멤버들은 즉각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 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닥터 윤은 곧바로 아이를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앰뷸런스를 부르라고 지시했다. 그 이유는 아이의 맹장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런 빈민촌 사람들에게 앰뷸런스와 대학병원 입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선 수송비와 입원비가 문제였다. 그때 옆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한 의료 선교팀 멤버가 개인적으로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금일봉을 건네주었다.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고개를 떨구고 감사의 눈물만 계속 흘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사의 조건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면 감사의 조건들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불만의 조건들도 냉정히 분석해 보면 상대적이란 것 또한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불행이 어떤 이들에게는 결코 불행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과테말라 의료선교를 다녀온 이후로, HMO 시스템으로 인한 병원예약의 까다로움에 대한 불평은 사치스런 불평이란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왜냐하면, 까다롭고 번거로운 HMO 시스템도 과테말라 사람들에게는 큰 축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너무 많은 감사의 조건들 속에 파묻혀 살고있기 때문에, 반대로 감사의 조건들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손국락
라번대 겸임교수·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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