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가을 바람 솔솔 부는… 가을 들녘에 서서, 코스모스처럼 한들거리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는 다면 피안의 세계가 따로 없을 것이다. 낙엽의 여행일까…, 아니면 악성의 고도(孤島)일까… 고독하면서도 신비하고, 신비하면서도 절실한… 베토벤의 협주곡이야말로 세계와 단절된, 소리의 저항인 것만 같다.
지난주 데이비스 심포니 홀에서 열린 ‘미도리’의 베토벤 협주곡 연주는 미도리의 정신세계를 보여준 특별한 연주였다. 미도리의 나이 어느덧 30대 중반…. 그럼에도 늘 신동의 이미지를 잃지 않고 있는 미도리야말로 타고난 연주자 인 것 같다. 가냘픈 체구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의 청아함은 영원한 소녀의 모습이다. 미도리의 연주는 항상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베토벤 연주에서만큼은 투명함과 日人 특유의 정신력이 결합되어 명연주를 창출했다.
미도리는 1971년에 출생, 어머니에게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1982년 쥬빈 메타와 함께 뉴욕 필과 협연한 뒤 일약 신동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당시 11세로 22년 전이었다. 미도리는 장영주나 벤겔로프등과는 또다른 소리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톱 클래스 바이올리니스트 중의 한 명이다. 결코 걸죽하거나 윤기 있는 소리는 아니지만 섬뜩할만치 투명한 소리가 일품이다. 다분히 실내악적이라고나할까, 21일 연주에서도 내면에 깊이 울리는 진한 소리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베토벤 하면 떠오르는 것이 ‘운명(교향곡)’, ‘황제(협주곡)’, ‘월광(소나타)’ 등이다. 모두가 관현악·피아노 곡들이어서 과연 베토벤이 바이올린 곡을 썼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지만 로망스(F장조),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소나타 ‘봄(5번)’, ‘클로이체르(9번)’…등은 베토벤이 남긴 명 바이올린 곡들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뿐 아니라 바이올린, 실내악곡 등에서도 재능을 발휘했는데 투박한 외모와는 달리 베토벤은 아름다움을 좋아했던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로망스 F장조’등은 베토벤의 이러한 일면을 보여주는 곡들이다.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 ‘황제’와 더불어 바이올린 협주곡의 황제라고 할 수 있는 ‘협주곡 D장조’를 1806년에 작곡, 바이올니스 프란츠 클레맨트와 함께 초연했는데 테크닉 상의 난제에도 불구하고 1844년 조셉 요하임의 연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됐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다른 바이올린 협주곡에 비해 듣기에 쉬운 작품이다. 독주 부분이 가히 눈부시다고는 할 수 없으나 내면에 깊이 차 오르는 충만감은 명곡의 조건에 손색이 없다. 단점이라면 바이올린의 독특함을 엿볼 수 없는 점이라고 할까, 어딘가 교향곡을 듣는 느낌이다. 시종 둔탁한 울림도 협주곡이 주는 발랄한 색채를 퇴색시키고 있다. 톡톡 튀는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등에 비해 긴장감도 떨어지고 막스 브르크의 협주곡에 비해 그윽한 서정미도 덜하다.
한국에서 FM의 모 해설자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무언가 틀린 감동’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음악의 격조를 지적한 것이겠지만 청각을 예민하게 자극하는 다른 협주곡에 비해 고집스러울만치 둔탁한 음향이 남다른 개성이 느껴진다. 굳이 표현하자면 전통 고수의 우직한 모습이라고나할까. 충실한 형식미가 기발함을 누르고 승전가를 부르고 있다.
시벨리우스나 바하, 베토벤, 등의 음악은 피를 토하듯 간절한 마음으로 들어야 제 맛이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하나의 교향악으로만 듣는데 그친다면 그 격조는 이해될 수 없다. 북극민의 민족의식, 격앙된 감정이 함께 해야 비로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베토벤과 바하 등도 영혼과 마주 대할 수 있는… 진실을 바라봄 없이는 무익한 바람일 뿐이다.
베토벤은 1794년 신동 바이올리니스트 프란츠 클레멘트(당시 13세)의 연주를 듣고 감격한 나머지 D장조 바이올린 협주곡을 구상했다고 한다. 본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던 베토벤은 협주곡 C장조를 작곡했으나 미완성에 그치고, 1806년에 가서야 협주곡을 완성하여 크레멘트에 헌정했다. 초연 며칠전에 완성된 작품은 클레멘트의 연습부족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30년 후 멘델스존에 의해 재발견되어 요하임의 연주로 최상의 협주곡으로 인정받게 됐다. 곡은 1악장- 알레그로, 2악장-라르고, 3악장-론도(알레그로)로 이루어져 있다. 둥둥둥 북소리로 시작되는 1악장은 긴 소나타 형식인데, 우울하면서도 경쾌하고, 중후한 맛을 담고 있는 한 편의 교향시다. 마치 빼앗긴 영토의… 왕자적 한을 담고 있다고나 할까?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기품있는 울림이 일품이다. 2악장 라르고, 3악장도 모두 버릴 곳 없이 아름답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D장조)은 피아노로도 연주되는 웅장한 교향악 적인 곡으로서,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꼽히는 멘델스존, 브람스의 협주곡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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