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자들은 어떻게 그토록 짧은 시일 안에 미국생활 속에서 성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미국 사람들에게서 듣는다. 한국인이 인터넷 사용률 세계 1위가 된 비결은 무엇이냐는 질문도 해온다.
나의 한결같은 대답은 지난 반세기간의 교육열 덕분이라는 것이다. 대학 졸업률이 성인 인구의 절반이나 되니 미국을 훨씬 앞지른다. 컴퓨터가 개인생활이나 직장 일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세상이 되면서 교육의 기반 없이 살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들려오는 뉴스 중에서 염려스러운 것은 서울대 학부 폐지안이다. 오랫동안 한국 학생들이 시험 지옥 속에서 자라왔고,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의 큰 원인으로 학벌 문제가 꼽혀 왔으니 대학 교육제도의 개혁과 정비가 정부의 시급한 과제로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지만 서울대학을 하향 평준화함으로써 교육제도가 개선되고 학벌로 인한 부작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발상은 문제가 있다.
중고등 학교의 평준화 정책은 사회학적 측면에서 볼 때 올바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의무교육이 국가 정책이니 모든 국민들이 동등하게 중등교육을 받도록 해야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학교육은 모든 국민을 위한 의무교육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유경쟁의 원칙 하에서 질적 향상을 도모하여야지 평준화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에서 개개인의 자유 의지와 능력의 차이를 무시했을 때 어떠한 결과가 돌아왔는지는 20세기의 역사 속에 살아 있는 교훈이다. 고등교육은 각 개인이 자유경쟁의 조건하에서 자기의 능력과 재주를 십분 발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몇 가지는 조정되어야 한다. 첫째, 국립대학의 입학은 모든 납세자들에게 평등하게 기회를 허락하여야 한다. 특히 사회정의와 도의 면에서 가난한 학생들이 돈 때문에 입학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정책을 세워야 한다.
많은 입학생들에게 학비 지원이 있어야 한다. 또한 지역적인 안배를 어느 정도 고려하는 것은 나쁜 정책이라 할 수 없다. 국립대학 입학에 시험성적만을 고려해서는 고등교육의 목적에 맞는 졸업생을 배출할 수 없게 된다.
둘째, 졸업 후 취업의 기회에도 사회 평형의 정책이 반영되어야 한다. 개인 기업체가 아닌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의 직원 채용 원칙에는 학벌과 출신 지방의 평형 원칙이 있어야 사회 부조리와 불안을 줄일 수 있다.
사회 진출의 전초기지인 대학 교육에 올바른 정책이 없다면 사회정의와 평등의 원칙은 이루어질 수 없다. 국가대계를 위한 장기정책이 요구되어진다.
서울대 평준화는 지극히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본다. 대학의 질적 향상 없이 세계무대에서의 경쟁은 불가능하다. 서울대를 내려서 평준화 할 것이 아니라 다른 대학들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이 오늘날 이만큼 발전한 것은 반세기 동안의 끊임없는 교육의 열매인데 이제 한 정권의 섣부른 정책 전환으로 망쳐서는 안 된다. 교육 정책과 제도는 어느 정권과 상관없이 장기계획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나 자신 서울대학의 교육을 받고 수십년 전 미국에 와서 지금껏 전문의 생활을 하면서 항상 한국의 기초 교육에 대한 긍지를 가져왔다. 이제 서울대 폐지 내지 평준화를 운운하는 소문을 들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바이다.
일반 정치는 잘못되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하고 고칠 수 있지만 교육제도가 잘못 되면 국가 장래를 망치는 일이 된다. 한국이 신중하게 국가 백년 대계를 세우기를 비는 마음뿐이다.
권영조/암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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